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피습 부위 봉합 수술을 마친 직후 “(한국민의) 관심과 성원에 감사한다”며 한국어로 “같이갑시다”는 글을 트위트에 남겼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위기의 상황에서도 대범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여 준 리퍼트 대사가 고맙고 반갑다. 그가 수술실을 나오자 마자 이런 메시지를 남긴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이번 일이 한ㆍ미간 전통적 우호와 동맹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선 안된다는 강한 의지가 그 핵심이라고 본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 정부가 가장 신경을 쓰는 것도 한미동맹의 역풍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사건 직후 한미 당국이 즉각 접촉을 갖고 “한미동맹은 추호도 흔들림이 없음을 재확인했다”고 서둘러 밝힌 것은 이같은 점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해외 순방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곧바로 입장을 표명한 것도 그만큼 사안을 중대하게 여기고 있다는 의미다. 하긴 조태용 외교부 차관의 국회 언급처럼 이 정도 일로 흐트러지거나 손상이 갈 정도로 양국 관계가 허약하지는 않다고 믿는다.
하지만 양국 정부의 노력과 희망과는 달리 사건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공교롭게도 최근 웬디 셔면 미 국무부 정무차관의 ‘과거사 덮고 가기’ 발언 파장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이다. 셔먼의 발언 행간에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대한 ‘한국 피로감’이 묻어있다. 고고도미사일 배치를 둘러싼 미묘한 갈등도 여전하다. 미국내에서 한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을 계기로 분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내 반미 여론도 확산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셔먼 발언에 은근히 마음이 상한 상태라 이번 사건이 반미 감정에 불을 붙이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테러범인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는 범행 이유로 지난 2일 시작된 한미연합 훈련 반대를 들었다. 게다가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남한 민심의 반영’, ‘전쟁광 미국에 가해진 징벌’ 등 자극적 용어로 국내 극단적 반미주의자들을 자극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 전체가 이번 사건을 냉정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 대사에 대한 테러가 남남갈등으로 번진다거나, 또 다른 반미 폭력행위로 이어진다면 자칫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테러범 김 씨의 범행 동기와 배후 등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사건의 본질이 명확해지고 쓸데없는 오해와 행동을 불러 들이지 않는다. 특히 정치권이 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1953년 한국과 미국이 상호방위조약으로 동맹국이 된 이후 양국 관계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면 한미 동맹은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