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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광장-조우호]우리 사회에 얼마의 소득이 적당할까
영화 「킹스맨」은 최근 개봉한 외화로는 인기가 있을 요소를 두루 갖추었다. 대중매체로서 영화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상식에서 출발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소재와 줄거리를 엮어나간다.

「킹스맨」은 문제 가정의 한 불량청소년이 능력을 갖춘 젊은 신사로 성장한다는 스토리를 가진 일종의 청소년 성장영화라 할 수 있다. 익히 알려진 장르다. 나아가 세계적 자본가 혹은 디지털 기업에게 정치권력은 물론 지구촌 전체가 종속되어 있다는 내용이나, 거대 자본과 부는 부동산과 주식을 통해 획득하고 상속을 통해 지속된다는 대사가 상식처럼 등장한다. 과거 소수 집단만이 알고 있었던 부의 증식 비법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된 셈이다.

이것은 그대로 현대 자본주의가 심각한 위험에 처해있다는 증거가 된다. 만약 정부와 거대 기업가들만 상황을 모르고 있다면 더욱 심각하고 불행한 일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소득과 부의 증식 자체보다는 부와 소득의 획득 방식과 그 정도가 중요하다. 소득은 많은 부분 노동과 기업 활동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면 노동과 기업 활동의 대가로 얼마의 소득을 올리는 것이 적당할까. 「킹스맨」의 배경인 현대 영국사회처럼, 제인 오스틴의 소설 「이성과 감성」에서는 19세기 초 영국 자본주의 사회를 묘사한다. 당시 귀족과 자본가들은 일반 소득보다 훨씬 많은 소득을 거둬야만 최소한의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여긴 것 같다.

토마 피케티는 그 정도가 당시 평균 소득의 최소 30배 이상이라고 분석하고, 많은 경우 자본가들의 연소득은 평균 소득의 50배에서 100배가 넘었다고 지적한다. 근대 산업혁명 자본주의를 대표했던 영국의 모습은 영화를 통해 보면 현대에도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영국뿐이랴. 현대 자본주의의 대표인 미국의 대기업 CEO들 역시 평균 근로자 임금의 100배 이상을 받는 것이 드물지 않다.

물론 자본가 혹은 기업가들이 얼마의 소득을 얻는 것이 합당할지에 대해 정해진 절대 기준은 없다. 하지만 그 정도를 유추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는 있다. 피케티 역시 그 점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 정보를 제공하는데, 지금은 19세기 초 영국보다 약 10배 이상의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 물질적 진보의 공적은 누구의 몫일까. 경제활동을 주도한 기업과 기업가 혹은 자본가의 몫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대 이후 생활수준의 증가는 산업혁명에 많은 부분 빚지고 있으며, 여기에는 과학 기술의 발전이 결정적이었다. 기업과 기업가는 그것을 이용한 것이다.

또한 산업혁명 이후 기업의 경제활동은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생태계의 많은 자원에 대한 거의 독점적 소비 없이는 불가능했고, 그것은 종종 생태계의 불균형으로 이어졌다. 즉 기업과 기업가들은 사회에 많은 빚을 지고 물질적 부를 이룩한 것이며, 우리의 생활수준을 10배나 그 이상 개선시킨 몫에 기업이나 기업가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근로자들을 빼고도, 과학기술과 생태계, 기업을 그 요인으로 본다면 그 몫은 아마 3분의 1이거나 그 이하일 수 있다. 그러면 계산은 간단하다. 기업가들을 포함해서 경제활동을 한 누구에게나 인정할 수 있는 능력에 따른 소득의 최고치는 근로자나 자영업자 평균소득의 10배 정도인 셈이다. 그 이상의 고소득에 대해서는 획기적으로 세금을 올려 사회의 몫을 돌려 줘야 한다.

물론 이것은 고소득의 성격과 기준에 대한 하나의 예일 뿐이다. 우리가 당장 유럽의 복지국가들처럼 더 많은 세금을 걷지 못한다면, 우선 우리 사회에 맞는 적정 소득과 고소득의 기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화두가 되고 있는 복지비용이나 증세의 문제도 여기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분명 나라마다 고소득의 성격과 기준이 다른 것이 현실이고, 그것은 각 사회가 합의할 문제라면, 우리도 이제 이런 점에 토론과 소통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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