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일에는 조짐이 있다. 일이 잘 되려면 어려운 문제도 뜻밖에 쉽게 풀리고, 일이 잘 안되려면 쉬운 일도 예상치 못한 변수로 꼬인다. 진말(秦末) 진승ㆍ오광의 난, 한말(韓末) 황건적의 난, 당말(唐末) 황소의 난, 원말(元末)홍건적의 난, 청말(淸末) 태평천국의 난이 그렇다. 고려 때 망이·망소이의 난, 조선 말기 동학농민운동도 다름 아니다. 모두 기득권 세력의 탐욕이 극에 달하면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져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던 때 일어난 반작용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그런 시대를 언급하긴 다소 거칠고 무리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처한 상황을 보면 곳곳에서 조짐이라 할만한 일들이 발견된다.
서민들은 미래가 없다. 아이를 못 낳는다. 저출산 세계 1위다. 교육비 감당도 안되고, 돈 들여 교육시켜 봐야 일자리가 없어서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지에 대한 가치는 혼돈이다. 아이들 공부는 학원 몫이 된 지 오래다. 공교육 기관은 연금 잘 나오는 좋은 직장일 뿐이다. 교육문제에 대한 정권의 대책이래봐야 대입제도만 누더기로 만들었다. 빚은 산더미인데, 일자리는 불안하다. 빚 부담에 교육비 부담에 40~50대들의 노후는 캄캄하다. 공적연금으로는 살기가 만만챦고, 사적연금은 미비하다. 이대로면 언젠가 삶의 절벽을 맞이한 노인들이 백수(白鬚)의 난을 일으킬지 모른다.
국민행복시대를 약속한 정부다. 지금 국민들이 행복할까? 현정부 출범 후 제대로 된 경제정책, 지켜진 공약이 몇 안된다. 기업 이익은 줄고, 국민들 생활은 곤궁해졌다. 세금 걷어 복지하면서 생색은 다 낸다. 잘 못 쓴 건 안 살피고 더 걷을 생각만 한다. 세금 더 걷으면서도 더 내라는 게 아니라고도 한다. 표(標)로 먹고 살던 여당 실세들이 가득한 내각인데, 국민과 기업에 돈 더 내라면서도 당당하다. 국회의원은 ‘김영란법’에서 자신들만 빼놓을 정도로 비열하고, 공무원은 대통령과 권력의 정치논리에 침묵한다. 대통령과 권력은 자기자랑 할 업적에만 매달린다. ‘나 잘했다’란 내용으로 가득한 전직 대통령의 자서전을 앞으로 또 볼 듯 하다.
기업 살리겠다고 지난 정부가 고환율 정책을 펼쳤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기업 곳간에 돈이 쌓인 원인을 보면 기업 스스로의 노력도 크지만 고환율 덕분도 적지 않다. 물론 생존을 위한 현금 버퍼(buffer)는 필요하다. 하지만 고환율의 그림자인 고물가 부담을 가장 크게 짊어졌던 것은 일반 국민들이다. 환율 떨어지기라도 하면 기업들은 경쟁력 떨어진다고 아우성하지 않았던가. 법인세 더 내라, 임금 올리라는 정부 요구가 원칙적으로 옳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로, 공적자금으로 국민들에게 빚을 졌다. 여유 있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당장 좀 손해를 보더라도 내수회복을 적극적으로 도우려는 노력이 아쉽다.
경제든 정치든 모든 체제는 문제를 안고 있다.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미래를 결정한다. 정부와 기업은 가계와 함께 경제의 3주체다. 국민의 미래가 사라지는 데, 당장 눈앞의 권력, 눈앞의 이익에만 사로잡힌다면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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