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오(吳)나라에 복수를 벼르던 월나라왕 구천(句踐)에 신하 문종이 7가치 계책(文種七計)를 건의한다. 구천은 이를 받아들여 철저히 시행한 덕분에 오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 문종칠계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재물로 상대국의 임금과 신하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준다. 둘째, 곡식의 가격을 올려 그들의 창고를 비우게 한다. 셋째, 미녀를 보내어 그들의 마음과 의지를 빼앗는다. 넷째, 솜씨 좋은 목공과 좋은 재목을 보내 큰 궁실을 크게 짓게 해 재정을 탕진시킨다. 다섯째, 아첨을 잘하는 신하를 보내 그들의 생각을 어지럽힌다. 여섯째, 직간 하는 충신들을 궁지로 몰아 스스로 죽게 만들어 결국 인재 풀(pool)을 얇게 만든다. 끝으로 일곱째, 지도층들이 사사로이 재물을 축적하게 만드는 한편 군사를 동원한 대외원정을 부추겨 재정을 피폐하게 한다.
크게 나누면 상대를 말초적으로 유혹해 방심하게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 재정을 파탄시키는 심리전과 경제전이다. 어떤 나라나 기업이라도 이 계책에 놀아난다면 엉망이 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뚜렷한 주인이 없는 어느 한 대기업의 곳간을 노린 권력이 이 계책을 펼친다고 가정해보자.
일단 권력은 힘을 이용해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을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채울 것이다. 권력과 관계 있는 기업들을 이 대기업이 높은 값에 인수합병(M&A)하도록 한다. 대기업의 경영실적은 악화되지만 권력은 계속 경영진의 자리를 지켜준다. CEO는 이에 힘입어 정권의 주문에 반대하는 내부 비판세력을 배척하고, 권력과 코드(code)가 맞는 이들로만 경영진을 채운다.
경영진은 그 대가로 비자금을 조성해 권력에 공급한다. 경영진은 부진을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해외투자로 눈을 돌리지만, 이 역시 엄청난 부실만 떠안는다. 해외투자가 권력에 비자금을 만들어주기 위한 눈가림이라는 의문도 일었지만, 권력의 힘으로 의혹제기를 막았다. 하지만 결국 이 대기업은 정권 교체와 함께 나락으로 추락한다.
매 정권 때마다 반복되는 CEO 비리가 이번에도 관심의 초점이 되고있다. 포스코는 지난 이명박(MB) 정부 때 권력과 가까웠던 기업 가운데 하나이며, 동시에 MB 정부를 지나며 부실해진 대기업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아무리 예전에는 공기업이었다지만, 자원개발의 ‘총대’를 맺던 수출입은행 등 국책기관들과 다른 민간기업이다. 그런데도 너무 권력과 가까웠다.
옛 부자들이 화식(貨殖)에 성공한 비결은 힘이 아니라 순리다. 권력과 결탁한 화식은 내부 약탈을 나을 뿐이다. 화식을 위한 권력은 결국 약탈자와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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