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고용절벽’이 점차 가시화되는 듯하다. 주요 기업의 신입 사원 채용이 표나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30대 그룹의 올해 신규 채용 인원은 12만1800명으로 작년보다 6.3% 가량 덜 뽑는다. 유례없는 고용한파라던 지난해보다 사정이 더 악화됐다는 얘기다.
대기업들이 신규 채용에 인색해진 것은 인건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저성장과 소비위축으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기업의 수익성이 자꾸 떨어지다보니 사람 한 명 쓰는 것조차 버거운 것이다. 게다가 내년부터 정년이 60세로 늘어나 그나마 채용 여력이 더 줄고 있다. 통상임금 확대 적용도 신규 채용을 꺼리는 요인으로 작용하다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도 좋지 않은데 고용 시장 환경까지 나빠지다보니 기업들이 일자리 만들기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 정책은 되레 거꾸로 가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틈만 나면 임금을 올리고, 고용도 늘리라고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에 동참하라는 요구다. 13일 경제5단체장과의 오찬 간담회에서도 재계에 “근로자 임금을 올려 줘야 한다”고 요청하더니, 15일 당정청(黨政靑) 정책협의회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을 언급했다.
최 부총리가 가고자하는 방향은 좋다.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생기고, 임금도 넉넉하게 준다면 소비가 늘어나고 경제도 덩달아 살아나게 된다. 고용과 임금인상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어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경제계도 충분히 공감하는 바다. 하지만 문제는 기업들의 수익성이 자꾸 쪼그라들어 이같은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일 형편이 못된다는 데 있다. 지난해 말 결산 기준으로 100대 상장사 영업이익률이 5.3%로 전년보다 0.8%포인트나 떨어졌다. 누구보다 최 부총리가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말을 여기 저기 하고 다니면 경제 살리기에는 도움도 안되면서 ‘내년 선거를 겨냥해 근로자 환심을 사려는 정치적 행보’라는 의심만 살 뿐이다.
일자리를 만들고 임금을 올리는 것은 정부가 나서 요구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전적으로 기업이 판단하고 결정할 문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발언처럼 정부는 규제 혁파하고 노동시장을 개혁하는 등 기업 활동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래서 수출이 살아나고, 내수가 활기를 띠면 정부가 말려도 기업은 고용을 늘리고, 임금을 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