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교육방송에서 금요일밤에 하는 ‘고전영화극장’이나 일요일에 하는 ‘일요 시네마’라라는 프로그램을 종종 본다. 극장도 가끔 찾고, 다운로드받아서 볼 때도 있지만 TV로 보는 영화는 뭔가 추억이 묻어 있는 느낌이다.
중년이라면 누구나 밤잠 설치며 ‘주말의 영화’를 보면서 감동과 재미를 받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자막이 대세가 되기 전, 성우들의 목소리로 더빙된 영화는 더 고전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주말의 명화는 설이나 추석에 방송국들이 ‘떨이’처럼 쏟아내는 천편일률적인 오락영화와는 달랐다(오락영화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주말의 명화를 보노라면 ‘시네마천국’처럼 괜히 애틋하고, ‘일 포스티노’처럼 애잔하면서 가슴이 설레었다.
최근 극장가에서는 과거의 영화작품들이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재개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지브리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재개봉해 15만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은 데 이어,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장국영 왕조현의 ‘천녀유혼’, 피아노 배틀장면으로 유명한 ‘말할 수 없는 비밀’ 등이 다시 국내 영화팬들을 찾는다.
이번에는 과연 첫 개봉때보다 더 나은 성적을 거둘지, 올드팬들이 더 많이 찾을지 의외로 젊은 영화팬들이 많이 찾을지도 궁금해진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재개봉 소식과 달리, 우리는 원치않아도 다시 봐야하는 불편한 현실에 둘러싸여있다.
일부 권력자들은 그것도 추억이라고 이름 붙일른지 모른다. 모르는 사이 길가 가로등 옆에 줄줄이 나부끼는 새마을 깃발은 과연 누구의 향수를 달래주려는 것일까. 일본이 군국주의 시절에나 주장했을 법한 왜곡된 사실을 기술한 역사교과서(감히 역사라고 불러도 될지)를 채택하는 교육자도 눈에 띈다.
군사독재시절 수출보국을 부르짖으며 기업과 공권력이 일심동체로 노동자들을 찍어 누르기만하던 모습도 요즘은 여기저기서 흔히 보인다. 막걸리 먹다 높으신 분 험담 좀 했다가 끌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정권 비판하는 전단지 뿌렸다고 잡아간다. 썩다 못해 구린내를 풍기던 ‘막걸리 선거’의 악습은 지금도 면면히 이어져온다.
우리는 ‘60년대’로 돌아간 것인가.
힘들었지만, 정이 있었고 살림살이 나아지는 맛이 있지 않았느냐고? 가난을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아래 우리는 ‘선진국’ 혹은 ‘민주국가’가 되는데 꼭 필요한 사회적 가치를 너무나 많이 포기했다. 돈을 벌어 세금과 정치헌금을 내는 기업들은 정권의 상전이고, 만만한 봉급장이들은 여전히 세금이나 꼬박꼬박 내면 되는 ‘총알받이’로 굳어졌다. 노인, 병자, 소년소녀 가장 등 국가가 일정 책임을 지고 돌봐야할 사회적 약자들은 혼자 일어서 보려다 무수히 쓰러진다. 대통령이 기업들의 불합리한 인재채용 시스템을 바로잡으려하지는 않고, 청년들에게 중동에 나가 돈 벌라고 권장하는 세상이다.
추억과 퇴행은 다르다. 되풀이되는 악습은 공포영화 ‘나이트메어’의 끔찍한 실사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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