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연초부터 수개월간 베스트셀러를 장식하며 밀리언셀러가 된 책이 있다. 틱낫한 베트남 스님이 쓴 ‘화’란 책이다. 2002년 출간된 이 책은 스님이 방한하면서 신드롬까지 일으켰다. 이 책은 제목 덕을 톡톡이 봤다. ‘Anger’를 ‘화’ 대신 ‘분노’로 표현했다면 얘기는 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화’란 말이 정서적으로 한국인들에겐 더 잘 와닿기 때문이다. 화나 스트레스, 억울한 감정이 쌓여 생긴 ‘화병’도 한국에서만 쓰는 말이다. 1995년 미국정신의학회에서는 이를 한국인 특유의 문화증후군으로 인정, 질병 분류표에 ‘Hwa-byung’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동의보감에서는 화병을 억울한 마음을 삭이지 못해 머리와 옆구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과 더불어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병이라고 정의하고 ‘울화병’으로 불렀다, 과거 화병은 주로 중년여성들의 몫이었다. 시댁식구들과의 갈등이 주요 원인이었으나 최근에는 20대 대학생부터 30~50대 주부, 노년층, 직장인을 가리지 않는다. 최근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44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직장인 90.18%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화병을 앓은 적이 있다고 했다. 화병이 스트레스를 표출하지 못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병이라면, 분노조절장애는 쌓인 스트레스와 분노의 감정을 밖으로 잘못 표출하는 게 문제다. 심리학자들은 분노 조절을 위해 분노의 상황을 잠시 잊고 딴 생각을 하라고 말한다. 또 화를 다스릴 수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가족 등에게 위로받기를 권한다. 틱낫한 스님이 제시하는 해법은 호흡과 걷기다. 이 두 가지를 통해 다다르는 것은 바로 마음의 자각이다. 발이 땅에 닿는 그 순간을 자각하고, 호흡을 자각하며 걷다보면 마음이 누그러져 불의 바다에서 쾌적한 호수로 바뀐다는 것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