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른 살 신예 감독에게 아카데미 3개 부문 상을 안겨준 ‘위플래쉬(Whiplash)’가 한국에서도 뜨거운 호응을 얻고있다. 저예산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보름 만에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섰다. 흥행속도가 드럼 연주자인 주인공의 손놀림 처럼 빠르다. 영화는 최고 연주자가 되려는 음대 신입생(앤드루)과 그를 조련하는 지휘자(플레처)가 펼치는 2인극이 뼈대를 이룬다. 이런 이야기라면 대게 ‘야신(野神)’ 김성근 감독 처럼 지옥훈련으로 제자의 잠재력을 끌어내 마침내 꿈을 이루는 해피엔딩을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지휘자가 참 멘토인지 폭군인지 모호해 끝까지 호기심을 놓지 못하게 하는 묘미가 있다.
뉴욕의 유명 음악학교 재즈 연주단 지휘자인 플래처는 “그만 하면 잘 했어”(Good Job) 따위의 말을 가장 혐오한다. 찰리 파커가 세계적 색소폰 연주가가 된 것은 그의 연주가 삼류라며 드럼 심벌을 얼굴을 향해 날린 조 존스(드러머) 덕 이라고 설파하는 인물이다. 자신이 원하는 템포에 맞추지 못하면 인권침해성 독설을 마다하지 않는다. 엄청난 속도로 연주하는 ‘더블 타임 스윙’ 주법을 해내지 못하는 앤드루에게 의자까지 집어던지며 으르렁댄다. 앤드루는 손에서 피가 튈때까지 드럼 스틱을 놓지 못한다. 영화 제목이 상징하듯 플레처의 채찍은 농장주가 노예의 등살을 파고드는 것 처럼 앤드루의 자존심을 후려친다.
이 지점에서 플레처와 오버랩되는 인물이 지난 23일 타계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다. 말레이 연방으로부터 퇴출당한 가난한 항구도시를 아시아에서 가장 잘사는 강소국으로 탈바꿈시킨 그의 업적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좁고 자원도 없는 나라가 다른 나라와 똑같이 하면 생존할 수 없다며 그가 펼친 전략적ㆍ실용적 리더십은 제3세계의 성공적 개발 모델로 우뚝 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플레처가 앤드루에게 그랬듯 국민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채찍질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껌 뱉기 같은 사소한 위반에 70만원을 물리고 시대착오적 태형까지 동원하는 등 강력한 처벌로 사람들을 옥죄었다. 집회ㆍ결사ㆍ언론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재판도 없이 정적을 감옥에 보내기도 했다. “대학 나온 남자는 대학 나온 여자와 결혼하는 게 좋다”는 발언으로 ‘유전자를 차별하는 아시아의 히틀러’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플래처의 엇나간 멘토링은 결국 파국을 부른다. 불안장애, 강박증에 시달리던 앤드루는 플레처에게 주먹을 날리고 학교를 떠난다. 영혼이 피폐해진 그는 드러머의 꿈도 접는다. 싱가포르에도 리콴유 시대의 그늘은 짙다. 국민 행복지수가 바닥권이고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절반이 더 좋은 기회가 오면 외국으로 떠나겠다고 대답해 리콴유가 그렇게 열망했던 ‘싱가포르인’이라는 정체성 만들기는 요원해 보인다.
위플래쉬의 백미는 마지막 10분의 대반전이다. 플레처의 화해 제스처에 속아 카네기홀에 서게 된 앤드루는 예정에 없던 곡이 연주되자 얼어붙는다. 무대에서 쫓겨난 그는 그러나 이내 발길을 돌려 다시 드럼 스틱을 잡고 재즈 명곡 캐러벤을 연주한다. 그것도 지휘자인 플래처의 템포가 아닌 자신의 템포로.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명 연주를 펼친다. 박근혜 대통령이 “부모님과 같은 정을 주신 분”이라며 29일 리콴유 국장에 참석한다. 박 대통령이 리콴유 리더십의 요체는 배우되 그 그늘은 극복해 그토록 열망하는 국민행복시대의 초석을 놓는 데 성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