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300㎞로 달리는 열차는 일단 사고가 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고속철 안전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이유다. 그런 관점에서 정부가 서울 수서역에서 출발하는 수도권 고속철도(수서∼평택 구간)의 개통을 당초보다 6개월 늦춘 내년 6월 이후로 재조정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과거 공공사업 진행 패턴에 비해 안전을 우선으로 여기는 진일보한 의식 변화라 할 수 있다.
공공 사업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되면 정부로선 신뢰에 큰 흠집이 날 수밖에 없다. 공기(工期)를 지키는 것은 국민과의 약속일뿐만 아니라 사업비 등 사업 자체의 혼란, 준공 후 효과 등을 따져보면 그럴만 하다. 더구나 수서~평택 고속철은 현재 운행 중인 서울역~금천역 구간이 KTX 선로 용량 과부하로 더 이상 열차를 투입할 수 없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신설하는 것이다. 지난 2일 개통된 호남고속철의 열차 운행 간격을 좁히지 못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같은 시급성에도 불구하고 수서~평택 고속철도건설은 공사가 상당히 지연돼 왔다. 당초 서울시와 종착역을 놓고 마찰을 빚은데다 지난 2013년에는 광역급행철도(GTX)사업과 겹쳐 재차 늦어진 것이다. 게다가 신갈지역의 단층대 지반이 연약해 자칫 붕괴 사고를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결국 6개월이나 준공을 늦추기로 한 결정적 요인이 된 것이다. 이는 속도전에 쫓겨 안전을 뒤로 한채 돌관공사로 임했던 과거 행태에서 벗어났다는 의미가 있다. 더구나 이 구간은 수서, 용인, 동탄 등 고층 아파트 건설이 계속되고 있는 지역을 통과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도심권 싱크 홀 발생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됐지만 우리의 안전의식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 당장 개통 5일째인 호남선 KTX는 벌써 세 차례나 장애가 발생해 하천 교량 위에 열차가 서는 등 극히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 차량지상신호 수신장치 순간 오작동과 청테이프를 붙인 워셔액 점검 커버로 인한 운행 장애 등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안전의식이 얼마나 결여돼 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와 코레일은 지난 2004년 경부선 KTX 개통과 2010년 KTX-산천 도입 초기에도 많은 장애가 발생했다며 안전화 정착 기간이 필요하다는 한심한 변명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국민 모두가 완전 신뢰할때까지 가능한 최단 시일내 무결점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천문학적인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KTX다. 이를 수출전략 산업으로 키워나가기 위해서도 ‘안전한 고속철’은 절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