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안도현은 ‘순서’라는 시에서 봄꽃 피는 순서를 이렇게 읊었다. 그 다음에는 우물가 앵두, 사과나무, 탱자꽃…
시인의 마을에선 봄꽃은 한번도 꽃피는 순서를 어기지 않았다. 그리고 보란듯 펑펑, 팡팡 피었다. 이 시를 읽으면 마을 여기저기서 꽃피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터져나오는 듯하다. 사실 요즘 봄날은 투명하고 따사로운 햇살 가득한 날을 꼽기가 쉽지 않다. 아파트 동앞에 매년 화사한 꽃을 선사해 준 벚꽃은 꽃이 채 피기도 전에 지어 기다리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가하면, 초등학교 담벼락을 노랗게 장식하던 개나리도 핀듯 만듯해 정녕 봄인가 싶을 정도다. 제대로 꽃마중을 못한 마음은 왠지 시간을 도둑맞은 기분이 들게 한다. 안도현 시인의 봄꽃처럼 팡팡 터진 꽃구경을 못하니 꽃기갈이 드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간단한 꽃요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요즘 봄꽃은 SNS를 타고도 온다. 탐스러운 목련부터 개나리, 진달래, 한창인 벚꽃까지 각지서 올라오는 꽃이 가득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청초한 들꽃까지 봄은 확실히 우리를 통과하고 있다.
봄꽃이 피는 건 과학적으로는 호르몬 때문이다. 낮의 일조시간이 길어지면서 잎에서 개화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활성화돼 특수한 수용체를 만들고 효소가 합성돼 꽃눈 형성 호르몬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햇빛은 인간의 호르몬에도 작용한다.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이 합성될 때 꼭 필요한 것이 햇빛이며, 햇빛을 쐬면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그러고 보면 봄꽃을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은 겨울 동안 모자랐던 따뜻한 빛에 대한 몸의 요구인지도 모른다.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