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 59회 신문의 날이다. 예년 같으면 조촐한 기념식이라도 열렸으련만 올해는 5월에 개최되는 ‘신문 엑스포’에 묶어 신문의 날 행사를 진행한단다. 그저 1년 중 하루로 치부된 채 신문의 날이 쓱 지난다.
60년대 말 신문의 날이 생각난다. 전날 3부 요인이 참석한 성대한(?) 기념식이 열리고 신문의 날 당일은 휴간을 했었다. 가난에 찌들고 휴일도 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삶을 지탱해 왔던 신문 기자들은 공짜로 얻은 고궁 입장권을 손에 쥐고 동물원이 있던 ‘창경원’을 찾았다. 직업 환경은 어렵기 짝이 없었지만 언론의 책무를 다 하겠다는 기개는 하늘을 찔렀다. 언론 자유를 외치고 언론 관련 악법 철폐를 요구하고 스스로 품위나 긍지를 지키자고 다짐하던 그런 날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신문의 날 휴간은 없어지고 기념식도 간단하게 치러졌다. 급기야 금년에는 기념일도 미루어 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모습은 오늘 날 위축되어 가는 저널리즘 매체인 신문의 위상과 무관치 않다고 보여 씁쓸하기만 하다.
신문 산업이 사양화될 것이라는 예측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첨예화 현상과 이에 따른 각종 미디어의 출현은 뉴스 생산이나 정보 처리에 독점적인 지위를 누려 왔던 신문의 영역을 파고들었고 신문의 영향력은 떨어지기만 했다. 이른바 기능의 대치 현상이 현실화된 것이다.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종이신문은 사라질 것인가? 지속된다면 어떤 형태가 될 것인가? 뉴스는 무료로 제공될 것인가? 등 절박한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주기 힘들 만큼 현실은 급변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신문이 빠른 시간 내에 없어질 것이라는데 선뜻 동의하지 않고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변화될수록 공동 관심사를 여과하고 주목하게 만드는 담론이 필요하고 이 임무는 저널리즘 매체인 신문만이 담당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논의의 기회와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신문의 고유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노스 캐롤라이나대학의 필립 마이어 교수는 신문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독자 확보나 단기적인 이익을 노릴 것이 아니라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궁리한다면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향력은 중요한 정보의 선택, 중요도에 따른 매끄러운 배치, 다양한 정보의 치밀하고 세심한 제시, 현안에 대한 심층적 분석과 논평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요컨대 저널리즘 본령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신문을 지키는 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금년도 신문의 날 표어가 ‘정보가 넘칠수록 신문은 돋보입니다.’란다. 넘쳐흐르는 자투리 정보 속에 값진 정보가 무엇인지를 가려 주는 신문의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기술(記述)보다는 설명을, 구호보다는 의제설정을, 정보보다는 지식을 전달하는 저널리즘을 다짐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삶의 대부분을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저널리즘을 업으로 삼았던 사람으로서 명품 저널리즘이 태어나길 신문의 날 아침에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