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기대했는데, 역시나 신통한 내용은 없었다. 6일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서민 주거비 부담 완화 방안’ 말이다. 주택기금의 대출금리와 임차보증료를 인하하겠다는 게 전부였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렸으니, 기금 대출금리 역시 하락요인이 발생했을 터인데, 이걸 생색내듯 대책이라고 내놓았으니 반응이 좋을리 만무다.
한푼이라도 아껴야 살 판에 금리 및 보증료 부담을 낮춰준다니 물론 고맙다. 그러나 꼭 담겨야할 게 없었다. 전세 공급을 확대하는 대책, 전세의 급격한 월세 전환을 막을 처방이 빠져 있었다.
사실, 난마처럼 문제가 얽혀있어 대책을 내놓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원죄는 정부에 있다. 정부는 오랫동안 잘못된 부동산 정책을 펴왔다. 서민주거가 불안정한 것은 부동산을 경기부양의 도구로 써왔던 정부 탓이다.
역대 정부는 어김없이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에 집착했다. 국민의 정부는 1998년 외환위기 때 내수위축을 막기 위한 명분으로 과감히 부동산 규제를 풀었다. 분양가 자율화 조치를 내놨다 부동산가격 안정 의지가 강했던 참여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2003년 분양권 전매금지 등을 통해 주택가격안정을 도모했지만 2004년 신용카드 사태로 경기가 위축되자, 대부분의 규제 강화 조치를 뒤로 미뤘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극복이라는 명분아래 종부세 대폭 완화, 분양권 전매허용, 재건축 규제 완화 등 부동산 관련 규제를 대부분 폐지했다. 2009~2010년엔 주택담보비율(LTV),총대출상환비율(DTI) 규제마저 완화했다.
그새 집값은 폭등했다. 서울 및 수도권의 경우 적게는 2~3배, 많게는 4~5배 집값이 뛰었다. 집이 있거나 투기를 한 사람은 재미를 봤지만 ‘만년 세살이’의 서민은 주거비용 부담만 늘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산층의 월 평균 소득은 1990년 82만원에서 2013년 384만원으로 23년 간 4.7배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전세보증금은 890만원에서 1억1707만원으로 13배나 급등했다. 주거비용이 소득증가분의 3배로 뛰었으니 삶의 질이 개선될 리 없다.
상황이 이렇지만, 박근혜 정부도 저리대출을 통해 주택 가수요를 유발, 부동산 경기를 살려보려는 듯한 움직임이어서 걱정이다. 대출중심의 주거대책은 위험하다. 가계부채는 이미 위험수준에 와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2년간 가계부채가 크게 늘면서 소득 하위 20%인 1분위 부채가구의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상환비율(DSR)은 2012년 45.3%에서 지난해 68.7%로 23.4% 포인트나 급증했다. 급증세인 가계대출을 계속 방치한다면 미국의 금리인상 이후로 점쳐지는 본격적인 금리상승기 때 가계는 이자비용 부담으로 인해 고사하고 말 것이다.
이번 대책이 낯뜨거웠나보다.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은 대책을 발표하기 무섭게 “조만간 금융안정 및 주거안정을 위한 후속 대책을 내겠다”고 밝혔다. 전월세 공급대책을 담을 듯한 운도 뗐다. ‘당장 문제를 해결하라’고 재촉하지 않을테니 제발, 제대로 된 장기 청사진이라도 내놨으면 좋겠다. 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