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8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우리 정치권을 일깨우는 강렬한 굉음처럼 들린다. 그 파장은 예상보다 컸고, 정치권은 이내 충격에 휩싸였다. 여당 원내대표 연설에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명연설’이라며 박수를 보내는 이례적 반응을 보였다. 반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당의 공식적 입장이 아니다”며 선긋기에 급급하는 모습이다. 적군과 아군이 서로 뒤바뀐 양상을 보일 정도로 지금 정치권은 혼란스럽다.
유 원내대표의 이날 연설은 다양한 관측과 해석이 가능하지만 한마디로 축약하면 ‘상식과 합리의 정치’라 할 수 있다. 그는 우리 정치와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은 ‘진영논리’라고 보았다. 실제 우리 정치는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여당과 야당이란 진영의 늪에 갇혀 패거리 싸움으로 날밤을 지새기 일쑤였다. 이런 고질병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상식과 합리의 정치는 요원하다. 보수를 지향하는 정당에 몸을 담은 그가 “내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따뜻한 공동체 건설”이라며 진보적 색채의 언급을 한 것은 그런 까닭이다.
보수의 혁신을 위한 통렬한 자기 반성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그는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근혜정부의 핵심정책을 정면비판했고, “어제의 새누리당이 경제성장과 자유시장경제에 치우쳤다면 내일은 성장과 복지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정당이 되겠다”는 말도 했다. 시대적 과제인 양극화 문제 해소를 위해 기존의 정체성도 과감하게 혁신해야 한다는 뜻이 담겼다. 필요하다면 ‘좌로 한클릭’ 더 갈수도 있고 집권세력과 여당부터 혁신해야 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유 원내대표의 국회연설은 우리 정치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 계기가 돼야 한다. 정치권 일각에선 파격적인 그의 발언을 놓고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이념적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라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실제 그런 의도가 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정치적 이해만 따질 일은 아니다. 우리 정치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 손바닥도 서로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합리적인 정치는 혼자만의 생각만으로 결코 구현되지는 않는다. 모든 정치권이 여기에 동참해야 한다. 유 원내대표의 혁신안에 대해 여권 내부 공감대부터 형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야당도 합리를 우선하는 정치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 정치도 이제 달라질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