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게 4월 16일은 ‘국가 최고 지도자’의 하루가 아니었다. 우선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팽목항을 찾았지만 희생자 가족들에게 박대를 당했다. 당초 박 대통령은 12시께 팽목항에 도착해 분향소에 들른 뒤 사망ㆍ실종자 가족을 위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온다는 소식에 가족들은 곧바로 분향소를 폐쇄하고 아예 팽목항을 떠나버렸다. 주인도 없는 텅빈 팽목항에서 “가족 잃은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박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 심경은 더없이 참담하다.
이후 박 대통령의 일정도 엎치락 뒤치락이었다. 분초 단위로 치밀하게 사전 준비되는 대통령의 일정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이날은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떠나는 일정히 잡혀있었다. 그러나 서울로 돌아온 박대통령은 출국을 미루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긴급 회동을 했다. 그 바람에 출국시간이 3시간 가량 늦춰져 첫 방문국인 콜롬비아에서 의전에 차질이 빚어졌다고 한다. 하긴 팽목항에서 피부로 마주한 민심이 예상보다 싸늘해 그대로 떠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여당 대표와의 긴급회동이 외유기간 중 국정을 대신 책임져야 할 이완구 국무총리의 거취에 대한 논의였다. 박 대통령으로선 참으로 곤혹스런 하루가 아닐 수 없다.
이쯤되면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들의 정무 분석력과 판단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추모 행사 참석 여부만 해도 그렇다.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의 출국시간은 비교적 충분했다. 서둘지 않아도 안산시 정부합동분향소든, 팽목항이든 얼마든지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출국을 핑계로 불참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다 허겁지겁 팽목항을 찾았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희생자 가족들이 진정성 없는 ‘보여주기’식 방문을 반가워할 턱이 없다.
박 대통령이 민심 흐름을 읽지 못하는 ‘불통 대통령’ 소리를 듣는 것도 따지고 보면 참모들 탓이 크다. 최근 확인된 사실이지만 박 대통령의 콜롬비아 일정도 정상회담이 맨 나중에 잡혀있어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했다고 한다. 굳이 세월호 1주기를 피해 도망치듯 떠날 게 아니라 다음날 새벽에라도 ‘당당하게’ 출국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뜩이나 ‘성완종 리스트’로 정국이 매우 혼란스런 상황 아닌가. 비서실장을 포함한 청와대 비서진들은 제대로 판단하고 보필할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그게 박 대통령은 물론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