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들이 나와서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예능프로그램이 매우 인기이다. 벌써 40회나 방송된 프로그램이지만 늘 각국의 특색 있는 문화와 다양한 시각들을 느낄 수 있어 기회가 되면 찾아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각국 대표들은 종종 자국의 문화 유산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데 이때 서로 자국의 것이 더 좋다 또는 먼저다 등으로 난상토론에서 얼굴을 붉히며 ‘우기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웃기기도 하지만, 그들의 자국에 대한 애정과 문화 유산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 훈훈하다.
나는 1983년에 봉사활동 차 한국에 왔다. 내가 처음 살았던 곳은 경상남도 통영, 옥빛 푸른 바다가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당시 그곳에서 가장 즐겨 찾던 곳은 미륵산 용화사였는데, 거기서 바라본 다도해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커다란 섬을 따라 점점이 늘어진 작은 섬들, 그 사이사이로 비치는 푸른 에메랄드 빛으로 펼쳐진 다도해의 모습은 아직도 아름다운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휴가를 내거나 업무를 보는 틈틈이 나는 방방곡곡 숨어 있는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 깊은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것을 좋아한다.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올랐던 지리산 능선길, 처음 본 대둔산 구름다리의 아찔함, 부처님오신날 용화사에서 연등이 온 길을 밝히는 신비스러운 분위기, 사시사철 조선왕조의 아름다움을 모두 간직한 듯한 창덕궁, 북한산 성곽 길에서 바라보는 한옥촌의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풍경 등등….
이런 한국의 자연과 문화유산을 둘러보면서 내가 가장 놀라는 것은 한국 안에 숨겨진 보물들에 비해 정작 이 보물의 주인인 한국 사람들은 무심한 듯하다는 것이다.
유럽의 대리석으로 쌓아 올린 거대한 성이나 성당은 최고로 치면서 자연과의 조화를 최고의 가치로 고려한 한국인의 유적은 어쩐지 여행 선호지에서 밀리는 것 같다. 한국인들의 한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진짜 인식이 어떤지 외국인인 내가 정확하게 단정할 순 없지만 어쩐지 어린시절 의무적으로 가는 유적지 또는 언제든 갈 수 있으니 마음먹고 떠날 필요는 없는 곳으로 그 가치를 덜하게 느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세계 7대 자연 유산으로 제주도가 선정될 만큼 세계가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제주도에 갈 거면 비슷한 비용이니 일본이나 중국 칭다오를 다녀오겠다고 하는 모습들이 눈에 띄는 것을 보면 한국인 스스로의 자부심은 아직 많이 부족해 보인다.
한국은 산과 강, 그리고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자연의 축복을 받은 아름다운 나라다. 또 그 자연을 조화롭고 지혜롭게 지켜온 전통과 문화가 유적지에 고스란히 잘 담겨있다. 온갖 풍파를 겪고도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천년 고찰들이나 동양의 음양오행 사상을 따라 투박하지만 선비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낸 서원들은 어느 나라의 화려한 유적지보다 더 멋스럽다.
다른 유적지가 더 크고 화려한 목표들을 위해 경쟁하며 인간의 문명적 이기만을 내세울 때 한국의 문화재는 자연 속의 한 풍경이 되기 위한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조화와 절제미를 갖춘 한국의 문화유산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철학을 담고 있다. 그 다름 속에서 나는 한국 문화재의 화려하지 않은 투박한 아름다움에 더 매력을 느낀다. 문화재 속에서 인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고, 앞서 말한 그 인기프로그램의 각국 외국인 대표들도 그렇고, 한국의 아름다움에 매료 돼 한국이 좋아서 한국에 살고 있다. 한류라는 문화적인 장치로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고 있고 그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만큼 한국인 스스로도 자긍심을 가지고 한국의 문화 유산을 아끼고 선전할 수 있는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