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임에도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의를 즉각 받아들임으로써 청와대는 또 다시 총리 후보자를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취임 후 불과 63일 만에 총리가 물러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인사가 만사’라는 격언을 다시한번 실감하게 된다. 국회 인사청문회 때 말 바꾸기를 거듭하는 이 총리의 모습을 불안하게 지켜봤던 국민들은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았다”며 장탄식을 쏟아내고 있다. 출범한 지 2년여밖에 안된 정부가 여섯 번째 총리 후보자 물색에 나선다고 하니 이런 국력 낭비가 없다.
박근혜 정부의 총리 인선은 우리 국민에겐 ‘트라우마’ 처럼 남아있다.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 후보자인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과 지난해 5, 6월 각각 지명된 안대희 전 대법관,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은 인사청문회 문턱도 넘지 못했다. 김 전 소장은 두 아들의 병역비리 논란과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지명 닷새 만에 사퇴했다. 안 전 대법관과 문 전 주필은 전관예우와 비뚤어진 역사관 등이 논란이 돼 연쇄 사퇴했다. 대안을 찾지 못한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힌 정홍원 당시 총리를 재기용하는 바람에 ‘빽도 총리’, ‘뫼비우스 총리’라는 비야냥도 나왔다. ‘준비된 소통형 총리’ 라던 이 총리는 인사 청문회에서 정직성과 신뢰성에 큰 문제를 드러냈지만 총리 후보자 3연속 낙마에 따른 국정 공백 우려 덕분에 간신히 청문회 문턱을 넘어섰다. 이 총리는 박근혜 정부 3년차 국정동력 회복을 위한 ‘사정 드라이브’ 주체로 나섰지만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휩싸이면서 거꾸로 ‘사정1호’로 지목되는 희극적 상황에 몰렸다.
박근혜 정부의 ‘인사 참사’를 지켜봐온 국민은 이제 총리 얘기만 들어도 신물이 날 판이다. 내세운 후보 마다 선량한 국민이면 갖추는 정도의 준법성과 도덕성 조차 부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총리 인사 청문회 때마다 국정은 표류하고 정치권은 소모적 정쟁에 빠져드는 일이 다반사였다.
지난 다섯 번의 총리 후보자 인선 실패는 청와대의 고장난 인사 시스템 탓이 크다. 그러나 궁극적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 정권 창출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국정 철학을 공유해야 한다는 이유로, 당ㆍ정ㆍ청간에 손발이 맞아야 한다는 이유로 내 사람, 우리 진영만 고집하는 좁은 인재 풀에 갇혀 널리 인재를 구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최근 친박계 의원들이 내각으로 대거 진입한 것이 잘 말해준다. 지금 후임 총리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인사들도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여섯 번째 총리마저 ‘내 사람-우리 진영’에서 고른다면 이 정권이 명운을 걸고 있는 공무원연금 및 노동시장 개혁은 겉돌 수밖에 없다. 연금ㆍ노동 2대 개혁이 성과를 내려면 야당이 수긍하고 진영에 초연한 통합적 총리가 절실하다. 박 대통령이 진영 밖으로 나와 이런 인재를 찾는다면 정권 3년차 국정운영이 더 원활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