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가가치세제와 소득(법인)세제의 성패는 사업자가 ‘세금계산서’를 얼마나 성실하게 주고받는가에 달렸다. 사업자간에 세금계산서 수수가 제대로 이뤄지면, 부가가치세ㆍ소득세ㆍ법인세 등 소비와 소득 관련 세금계산의 근거가 되는 매출액과 매입액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되면 사업자의 탈세가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근거과세와 공평과세가 이뤄진다.
현행 세법상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는 연간 매출액이 4800만원에 미달하는 간이과세사업자와 그 밖의 일반과세사업자로 나뉜다. 그런데 간이과세사업자는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하고도 언제 누구에게 얼마의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했는지를 나타내는 세금 계산 근거 자료(세금계산서)를 정부에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간이과세제는 태생적으로 탈세와 유통 문란을 부추길 소지를 안고 있는 비정상적인 세제다.
간이과세사업자는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할 때 매출처에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아도 될뿐더러,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받을 때 세금계산서를 수취하려 하지 않는다. 간이과세사업자는 재화 또는 용역 매입 시 부담한 부가가치세의 일부만 공제받기 때문이다. 간이과세사업자와 거래하는 일부 고소득 자영사업자는 간이과세제의 이런 허점을 악용해 세금계산서를 주고 받지 않는 방법으로 부가가치세ㆍ법인세ㆍ소득세 등 제세를 탈세한다. 간이과세제를 악용한 사업자의 탈세 규모는 연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세금 계산과 유통 과정상 부작용이 큰 간이과세제를 운영하는 이유가 뭘까? 일반과세사업자는 매출액의 10%를 부가가치세로 내야한다. 하지만 간이과세사업자는 업종에 따라 매출액의 0.5~3%에 해당하는 낮은 세율로 부가가치세를 납부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이와 함께 영세사업자의 납세 절자 간소화 차원에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아도 되는 혜택이 있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간이과세사업자가 178만 명이나 된다. 전체 사업자(499만 명)의 35.7%로서 사업자 3명 중 1명꼴로 영세사업자란 얘기다. 월 매출액이 400만원에 미달하는 영세사업자라야 간이과세 대상이 된다. 이 경우 이익률이 20%라 해도 월 소득이 80만원도 안 된다. 이는 기초생활보장대상자의 최저생계비 166만원(4인 가족 기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소득이다. 비정상도 이런 비정상이 없다. 실제는 간이과세 대상이 아닌 일반과세사업자가 거래를 숨기는 탈세 수단으로 간이과세제를 악용하는 사업자가 많다는 결론이다. 정부는 탈세자를 돕는 간이과세제를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현행 간이과세제는 영세사업자 보호라는 긍정적 효과보다 고소득 자영사업자의 ‘탈세 블랙홀’로 악용되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 또한 근거과세와 공평과세에 역행한다. 간이과세제를 폐지하면 지하경제가 줄어들면서 세원이 양성화돼 연 6조원 정도의 세수가 늘어난다. 세무조사로 연간 확보할 수 있는 세수 규모와 맞먹는다. 영세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은 과세기반을 허무는 ‘간이과세 방법’보다 세금계산서 수수로 세원을 늘리는 정도에 따라 혜택을 주는 ‘세액공제 방법’이 바람직하다. 정부는 탈세 블랙홀인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제를 그대로 두고 세무조사라는 무기로 기업을 들볶아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