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다시 한번 민심과 동떨어진 대(對)국민 메시지를 남겼다. 박 대통령은 남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성완종 파문’과 이완구 국무총리 사퇴 등 최근 정국 혼란에 대한 입장을 내놓았다. 여독도 미처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신속한 대응으로 사태의 조기 수습 의지를 보인 건 평가할 만 하다. 그러나 메시지 내용은 국민의 바람과는 엄청난 괴리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는 흩트러진 민심을 다잡고, 국정 운영의 동력을 마련할 수 없다. 사태 수습은 커녕 일을 더 크게 만들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무엇보다 전하는 메시지가 사태의 본질과 거리가 너무 멀다. 건강 문제로 청와대 홍보수석이 대신 읽은 박 대통령 입장 표명의 요지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에 관한 언급이었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은 “성완종씨에 대한 연이은 특별사면이 궁극적으로 경제도 어지럽혔고, 오늘과 같이 있어선 안될 일이 일어나게 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메가톤급 폭풍을 몰고 온 최근 일련 사태의 근본 원인이 결국 성 전 회장의 부적절한 사면에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성 전 회장에 대한 두 번의 사면을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국민들은 박 대통령의 상황 인식을 더 납득할 수 없다.
게다가 시기도 매우 좋지 않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는 4ㆍ29 재보궐선거를 불과 하루 앞두고 나왔다. 여기서 ‘특사 문제’를 언급한 것은 누가 봐도 노무현 정부에서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겨냥하고 있다. 목전의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라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야당이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비판을 해도 할말이 없게 됐다.
지금 국민들이 맥이 풀리고 화가 나는 것은 전ㆍ현직 비서실장 등 박근혜 정부 핵심 인사들이 ‘성완종 리스트’에 대거 오르내리는 데도 이들이 발뺌과 거짓말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물론 박 대통령으로선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유감이나 사과를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여부를 떠나 이로 인해 국무총리가 낙마하고 국정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박 대통령은 국민들 앞에 머리를 숙여 마땅하다. 그런데도 대선자금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 없이 정치권 전체의 문제로 싸잡아 넘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 국민들은 박 대통령의 메시지에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민심을 향방을 제대로 읽고, 국정 운영에 반영해야 한다. 특히 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인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