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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24-下. ‘인도의 베네치아’ 코친, 여행자의 안식처
[HOOC=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반나절의 투어가 끝나고 작별인사를 하고 배에서 내린다. 라즈 부부는 종일 투어를 신청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가이드와 셋이 남은 수로유람을 할 것이다. 가이드는 아까부터 은근히 종일 투어를 하라며 압박중이고 라즈도 같이 가지고 한다. 모한 아저씨와의 약속도 있고 사실 이 정도 수로유람이면 볼 건 다 본 듯해서 아쉽지만 내리기로 한다. 라즈부부와 작별을 하고 우리를 기다리던 호텔 택시에 탄다. 



시내에는 축제 준비가 한창이다. 축제 구경을 못하고 오늘밤 떠나야 하는 게 안타깝다.

에르나꿀람의 호텔 근처에서 내려 어제 봐 둔 쇼핑몰에 간다. 백화점 크기의 커다란 건물 전체가 모두 옷감이나 전통 옷을 파는 쇼핑몰이다. 시원한 매장을 돌아다니며 옷을 고르고 입어보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간다. 금방 수로유람을 하던 신선들은 어디가고 쇼핑에 정신없는 현대인의 삶에 코를 박는다. 하루에 두 종류의 세상을 사는 느낌이다. 동행은 펀자비 드레스를 한 벌 사고 나도 민소매 상의를 하나 사서 나온다.

시간이 벌써 오후 3시인데 점심도 못 먹어서 쇼핑몰 바로 앞 건물의 ‘Indian Family Restaurant’으로 들어간다.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니까 비싼 곳인가 싶지만 4시까진 모한 아저씨를 만나러 호텔로 가야하고 배도 고프니 그냥 들어가 보기로 한다. 식당은 다행히도 우리식 패밀리 레스토랑은 아니다. 말 그대로 ‘가족식당’같은 분위기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려 하던 우리는 “꺄악~” 소리를 지르고 만다. 앉으려던 바로 옆 테이블에서 모한 아저씨가 직원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귀여운 콧수염을 씰룩 거리며 너희들 여기 어떻게 왔느냐고 묻는 모한을 보니 반가워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런 우연이 다 있나 싶은게 이 상황이 너무 재미있다. 오지랖 넓으신 아빠 마인드 모한 아저씨는 반가우면서도 놀라운 우연에 입을 벌리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빙그레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뭐 먹을 거냐고 묻는다. 메뉴도 모르는 외국인인 우리가 대답하기도 전에 웨이터를 불러 메뉴판을 보고는 의견도 묻지 않고 단호히 메뉴를 정해주고 지기 테이블로 돌아간다. 잠시후 식사가 나온 후 또다시 우리 테이블로 와서는 먹는 순서와 방법, 맛을 미리 알려준다.

덕분에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는다. 먹는 양이 무척 적은 사람이었는데, 이제 남인도에선 저 많은 양을 다 먹어 치운다. 내가 생각해도 기가 찰 지경이다. 내 모습인데 나 같지 않으니 말이다. 여행지에선 한국 있을 때와 많이 달라진다. 동화 속 요정처럼 필요한 순간에 눈앞에 나타나는 모한아저씨와의 인연도 너무 재미있다. 비록 요정이 좀 독단적(?)인 것 같아도 그것이 친절에서 비롯되었음을 아니까 더 유쾌하다. 일상과는 다른 나를 만나게 되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는 여행의 날들이 행복감을 준다.



오늘밤 떠나는 우리에게 시간이 별로 없음을 아는 아저씨는 우리를 해변 선착장으로 데려간다. 코친의 4구역 중 포트 코친(Port Cochin)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서다. 날짜를 정하지 않고 정처 없이 다니면 좋겠는데 이미 항공편을 예약해 놓은 일정이라 시간이 별로 없다. 포트코친에서 며칠 머무르면서 향신료항구의 옛 풍경을 둘러보는 것도 좋은데 당장 오늘밤 떠나야 한다.



현대적인 에르나꿀람에서 포트코친으로 가는 바다에 해가 지고 있다. 서쪽 바다라 석양이 더욱 아름답다.

호텔과 요트가 있는 현대적인 모습도 보인다. 이 모든 풍경이 어우러져 아름답기만 하다.

포트코친으로 가는 조금 다른 바다위에서 해가 진다. 인도의 동부 벵골만을 지나, 깐야꾸마리에서 인도양을 바라보고, 이제 아라비아해 위에 떠 있다. 인도를 크게 한바퀴 돌고 있는 일정이다.



포트코친은 고풍스런 느낌이 든다. 어느 건물벽을 가득 채운 그림이 눈에 쏙 들어온다.

여기는 남인도 포트코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인지 중국의 쑤저우인지 모를 풍경이다. 물길로 이동을 하는 생활이라 다를 바 없는 경치다.

고즈넉한 포트코친에 머무르지 못하고 떠나는 게 못내 아쉽다. 다음에 인도에 오게 되면 꼭 여기서 머무르고 싶다.

다시 에르나꿀람으로 돌아와 배에서 내릴 때쯤엔 어둑어둑해진다. 밤바다가 아름답다. 모한아저씨랑 동행이랑 셋이 함께 수다를 떨며 밤거리에 나선다. 조만간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갈 예정이니 그때 꼭 서울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잊지 않는다. 정신없이 다니다가 환전도 못했다고 하니까 바로 릭샤를 잡아서 인근 은행 ATM에 데려다 준다. 그 릭샤를 다시 타고 사설 버스 사무실로 향한다.

우리는 오늘 밤버스로 뱅갈로르(Bangalror)를 향해 떠나고 모한은 내일 아침 첸나이로 가야한다. 축제가 가까워져 모한아저씨가 탈 버스표는 구하지 못하고 우리는 뱅갈로르 행 볼보 버스 티켓을 손에 쥔다. 이제 맡겨놓은 배낭을 가지러 호텔로 가야한다. 늘 그랬던 것처럼 모한이 지나가던 릭샤를 불러 세운다. 여태 함께 다녔으니 호텔에도 같이 가는 건가 싶었는데 우리가 릭샤에 올라타자마자 그는 콧수염을 찡긋 거리고 가지런한 하얀 이를 드러내며 특유의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냥 서 있다. 



“이젠 너희 둘이 가라. 잘 할 수 있지? 여행 잘하고 한국에서 봐.”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느닷없는 이별에 마음이 찡한데 모한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악수를 청한다.

짐을 찾고 버스사무실로 돌아와 버스를 기다리며 이제 모한아저씨와 작별한 게 실감난다. 거의 한 달을 인도를 돌아다니면서 코친에서처럼 마음이 편안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혼자라는 부담감이 늘 있었고, 동행이 생긴 후에도 여행자이기에 느끼는 낯선 것들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항상 깔려 있었다. 설렘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긴장감은 기본옵션이다. 여기 코친에 오면서 모한아저씨를 만나서 그런 부담감들이 사라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닐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어디선가 모한아저씨가 짠하고 나타나서 해결해 줄 것만 같았다. 이 처음 기차에서 만났을 때 낯설던 그를 경계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께랄라주, 코친이라는 말을 들으면 늘 찬드라 모한 아저씨가 떠오를 것 같다.

또다시 뱅갈로르행 밤버스에 몸을 구겨 넣는다. 함피(Hampi)로 가기 위해 내일 하루 뱅갈로르를 경유할 예정이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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