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아니 한국인에게 개인정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문제다. 하도 많은 사건ㆍ사고에 시달리다 보니 개인정보 애기만 나오면 우선 화들짝 놀란다. 지난 13일 논란을 빚었던 외환은행의 ‘개인정보 수집ㆍ이용ㆍ제공 동의서’를 바라보는 시각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측이 건강정보를 비롯해 노조 가입여부, CCTV 촬영정보 및 출입기록 같은 민감한 개인정보를 강요했다는 게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심각한 인권침해이자 위협일 뿐 아니라 조기통합을 위해 노조 통제 의도까지 드러낸 범법행위”라고 주장하며 사측을 압박했다. 개인정보를 노조를 겁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왠지 석연치 않다. A은행의 개인정보 동의서를 보자. 필수와 선택이라는 차이만 빼면 “저인망식 개인정보 수집”이라고 주장하는 항목들이 모두 있다.
‘CCTV 촬영 정보’는 필수적 정보 항목에, 민감정보 동의 여부 항목에 ‘건강 관련 정보(장애사항 포함), 노동조합 가입 탈퇴’가 들어가 있다. 이 뿐인가. “위 개인정보의 제공에 관한 동의는 계약의 체결 및 이행을 위해 필수적이므로, 위 사항에 동의하셔야만 근로계약의 체결 및 유지가 가능합니다”라는 문구도 있다. 외환은행의 개인정보 동의서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애기다. 다른 시중은행 모두 상황은 똑같다.
마치 외환은행만이 불법적인 개인정보를 취합하려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왜곡이다. 물론 ‘필수’와 ‘선택’ 항목은 엄연히 다르다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필수와 선택이 단순히 형식적 논리에 그치는 한국적 현실에서 보면 이를 마치 외환은행만의 범법행위로 모는 것은 논리비약이다. 은행권의 개인정보 수집 관행(?)이 잘못된 것이라면 전체 은행권을 대상으로 주장하고 요구해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의구심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오는 15일은 하나금융이 신청한 이의신청(하나ㆍ외환은행 통합작업 금지 가처분 결정에 대한) 2차 심문기일이 있는 날이다. 사측 노조 모두 통합에 대해 논의를 진지하게 해야 할 시점에 여론호도성 정보를 흘리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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