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패왕 항우(項羽)가 최후까지 함께한 정병 8000명을 얻은 비결이다. 진(秦)에 반기를 들려던 회계 태수 은통(殷通)을 선수(先手)로 제거하고 그 휘하 병력을 흡수했다. 여기서 ‘선제’가 비롯됐다.
‘항장불살(降將不殺)‘
박삼구 회장이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을 찾아 아시아나항공과 모기업 금호산업 대표이사 회장 직을 내려놓았다. 역시 ‘선수’다. 경영개선 약정 만기를 앞두고 채권단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다. 선수를 두지 않으면 채권단 압박이 먼저 들어올 게 뻔하다. 도움을 먼저 청했고, 회장직 사퇴로 여론을 환기 시켰다. 이제 채권단은 지원요청을 거절하기 어렵게 됐다. 국적항공사 부도를 방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산은이 박 회장을 상대한 지가 벌써 10년이다. 대우건설을 비롯해 금호타이어, KDB생명 등 산은이 떠안은 기업들 대부분이 박 회장 때문이다. 금호타이어 매각 과정에서는 우선매수권과 브랜드사용권을 앞세운 박 회장의 ‘몽니’로 진땀을 빼야했다. 이번에도 선수는 빼앗겼지만, 수세에 몰리지는 않았다. 이동걸 회장은 “자구안을 먼저 내놓라”며 공을 돌렸다.
사실 박 회장이 용퇴결정을 내렸지만 그룹 지배구조 정점인 금호고속 최대주주다. 그룹 전략경영실 사장을 맡다 아시아나IDT로 옮긴 박세창 사장도 이 회사 2대주주다. 외부에서 ‘회장’을 영입한다고 해도 여전히 그룹 ‘옥새’는 박 회장 부자 손에 있다.
박 회장 부자가 금호고속과 금호산업 경영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가치가 직간접적으로 훼손됐다는 분석도 있다. 일례로 박 회장 일가가 사실상 지배하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그룹 내 시설관리와 환경미화, 매점 등 어런저런 일감을 맡는 회사들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재단’이어서 지배구조에서 숨겨져 있고, 일감몰아주기 등 규제에서도 자유롭다.
채권단이 추가지원으로 경영정상화를 이뤄낸다면 박 회장은 ‘건강’해진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을 다시 넘겨받게 된다. 만에 하나 경영정상화에 실패한다면 그 책임은 채권단이 질 수 있다. 국책은행 돈이나 민간 채권단의 자금이 공짜는 아니다. 채권단 입장에서 경영정상화의 공과를 평가받고, 재발을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워크아웃에 빠뜨린 박 회장에게 10년째 아시아나항공 경영을 맡긴 결과가 지금이다. 박 회장은 한때 사재를 다 털었다고 밝혔지만, 결국 다시 그룹의 주인이 됐다. 그 동안 박 회장이 선보인 인수합병(M&A)과 자금조달 방법, 그리고 채권단과의 협상기법은 기상천외했다. 산은 등 채권단은 천문학적 지원을 하고도 투자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다.
박 회장은 그룹 지배력은 유지하면서 회사는 살리는 묘수를 내려할 것으로 보인다. 산은은 이번만큼은 지원만 해주고 실속은 못 챙기는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각오다. 진짜 두뇌게임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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