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한 현실에 대한 환멸 공감
1일(현지시간) 칠레 산티아고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조커 분장의 참가자들. [AP] |
“조커는 우리다”(레바논시위 참가자)
지난달 개봉한 영화 ‘조커’가 중남미와 홍콩,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고 있는 시위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영화 조커는 빈부격차가 극에 달한 가상의 도시 고담시에서 가난과 고독에 휩싸인 주인공 아서 플렉이 점차 냉혈한 무정부주의자로 변화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3일(현지시간) CNN은 “나라마다 시위의 원인과 불만이 다르지만, 최근들어 일부 시위들은 ‘사이코패스 살인자’의 영감을 얻는 공통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의 ‘왓츠앱’ 과금 조치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한달 째 이어지고 있는 레바논에서는 반정부 구호가 담긴 포스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포스팅 곳곳에서 조커의 모습이 발견되고 있다. 한 거리 예술가 형제가 화염병을 들고 있는 조커의 모습 등 조커의 이미지를 차용해 만든 각종 그래피티 그림과 포스터가 시발점이었다.
홍콩에서는 정부의 ‘복면금지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조커 마스크를 쓴 시위 참가자들이 늘었고, 이외에도 이라크와 칠레, 볼리비아, 스페인 등에서도 조커 분장을 한 참가자들의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조커가 반정부 시위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유는 시민들이 고담시에 살고 있는 ‘아서 플렉’에게 극심한 불평등과 가난, 부패로 고통받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칠레 시위 참가자는 CNN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조커는 연약하고 버림받은 인물”이라면서 “대부분이 특권층이 아닌 칠레 국민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다”고 했다. 레바논의 거리 예술가 모하메드 카바니 역시 “베이루트(레바논의 수도)는 새로운 고담시다”면서 “지금 레바논은 극도로 좌절하고 희망마저 억압당한 약자로 가드차 있다”고 밝혔다.
조커는 권력기관을 향한 일종의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마틴루터대학의 안드레아스 비어 연구원은 “시위 현장에서 조커 분장과 마스크가 등장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시위대가 ‘나는 지금 밑바닥에 있지만 다음에는 무엇을 할지 모르니 주의하라’라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손미정 기자/bal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