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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안 1세대 맏형의 ‘게임처럼 재미있고 안전한 보안’ 이야기
해커정신 무장한 ‘라온시큐어’ 이순형 대표…FIDO 이사회 소속 구글·아마존 등과 어깨 나란히…DID 모바일 신분증으로 제대로 된 사회공헌 소망
이순형 라온시큐어 대표가 서울 역삼동 라온시큐어 본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RAON[ra:cn] v. make it fun and secure.

이순형(49) 라온시큐어 대표가 건넨 오렌지색 명함 상단에 적혀있는 문구다. 회사 이름인 ‘라온’을 ‘재미있고 안전하게 만들다’란 동사로 재해석했다. ‘즐겁다’란 순우리말 ‘라온’의 원래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이 문구는 이 대표뿐만 아니라 모든 라온시큐어 소속 직원들의 명함에 공통적으로 적혀있는 말이다. 이 대표가 직접 아이디어를 냈다.

“단어 자체가 ‘검색하다’는 뜻이 된 구글(google)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 대표. 라온이란 이름만 들어도 보안이 게임처럼 쉽고 재미있다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고 싶다는 그의 포부가 담겨 있다.

나아가 이 대표가 그동안 기업을 이끌어온 방식과 앞으로 펼치고자 하는 경영 철학도 명함 속 문구만으로 엿볼 수 있다.

▶게임 PC통신 운영자서 보안 1세대 리더로=이 대표는 대학 시절 게임 정보를 공유하는 게임전문 PC통신을 운영했다. 이 대표는 게임 정보가 공유되던 공간에 게임 관련 해킹 방법이 올라오는 현상에 주목했다. 나중에는 게임이 아닌 상용 프로그램에 대한 해킹 방법까지 올라왔다. 이 대표는 “해커들이 공유하는 해킹 방법들을 보고 진로를 보안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화학을 전공하던 대학생이 보안 업계로 발을 들이던 순간이었다.

이 대표는 온라인 상에서 만난 전문가들과 1995년 보안기업 소프트포럼을 창업했다. 소프트포럼은 인터넷 뱅킹 바람을 타고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인터넷 시장이 커질수록 해킹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며 이 대표는 해커에 집중했다. 이에 ‘잘 뚫는 사람이 잘 막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쁜 해커(크래커)가 아닌 좋은 해커(화이트해커)를 키우기로 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2008년 설립된 국제해킹방어대회 코드게이트다. 그는 초대 조직위원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국내 화이트해커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사업에 몰두하는 사이 놓치는 것도 있었다. 바로 가족이다. 그는 성공가도를 달리던 중 가족과 함께해외로 떠났다. 하지만 일을 떠나 있을 때도 보안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이 시기에도 벤처캐피털을 설립해 보안업체 멘토를 맡았다.

4년간의 해외 생활을 마치고 국내 보안 업계로 돌아왔고 2012년 지금의 라온시큐어를 창업해 여전히 보안 1세대 리더로 활약하고 있다.

라온시큐어에서도 이 대표는 해커 양성에 힘주고 있다. 이 대표는 “처음 화이트해커 후배 2~3명의 병역 특례를 위해 화이트해커 육성 팀 ‘화이트햇’을 운영했다”며 “7년이 지난 현재 30여명이 활동하는 자회사 ‘라온화이트햇’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운영 전권을 팀원들에게 맡기고, 어떤 사업이든 그들이 스스로 도전하겠다는 의사만 있으면 아낌없이 지원을 해줬다”며 “제 2, 제3의 화이트햇 팀과 같은 자율 조직이 사내에 나온다면 언제든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은 달콤한 열매=라온시큐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정도로 유명한 회사는 아니다. 하지만 이 회사가 개발,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는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순형 대표는 “지금도 전 국민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라온시큐어가 개발·서비스하는 모바일 백신, 가상 키보드와 툴킷 등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업체 중에선 유일하게 모바일 백신, 모바일 단말관리(MDM), 가상 키보드, 암호인증 공개키기반구조(PKI), 앱 위·변조 방지 등 통합 모바일 보안 솔루션 모두를 자체 개발해 보유 중인 곳이 바로 라온시큐어다.

올해로 코스닥 상장 9년차를 맞은 라온시큐어. 지난 10년 가까이 회사를 이끌면서 이 대표가 단연 첫 손에 꼽는 성과가 있다. 바로 FIDO(Fast Identity Online·생체 정보를 활용한 인증 시스템) 기반 생체인증 솔루션 부문에서 글로벌 최고 기업으로 인정받은 일이다.

라온시큐어는 지난 2017년 5월 FIDO 표준화 국제단체인 ‘FIDO 얼라이언스’의 이사회 일원으로 선임됐다. 평회원으로 처음 FIDO 얼라이언스에 문을 두드린 지 거의 5년 만의 일이었다.

달콤한 열매는 그냥 쉽게 얻어진 게 아니었다.

평회원으로 첫 발을 내디뎠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이 대표. “벤처기업이라고는 실리콘밸리 외엔 상대도 않던 그 당시, 우리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존재였다”며 “우리 기업을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취급하고 핵심 멤버들로부터 면박당하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냉랭한 시선에도 이순형 대표는 굴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매번 총회에 열심히 참석해 핵심 이사회 멤버들에게 라온시큐어의 존재감을 알리려 노력했다. 이 대표는 “철저한 외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몇 년을 쫓아다니며 명함을 돌리고 조언을 구하다 보니 조금씩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중간 멤버로 올라가기까지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이 대표는 “총회마다 신한·씨티은행 등 국내 주요 금융기관에 FIDO 생체 인증 서비스를 구축한 경험 등 각종 레퍼런스를 문서로 만들어 갖고 다니며 기회가 될 때마다 나눠주고 설명했다”며 도전의 순간들을 소개했다.

그로부터 이사회 멤버가 되기까지도 세 차례의 낙방과 2년이란 시간이 더 필요했다. 결국 라온시큐어는 ‘민원24’에 FIDO 기반 생체인증 기술을 제공한 것을 계기로 이사회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이로써 라온시큐어는 전 세계 36개 기업만 등록된 FIDO 얼라이언스 이사회 소속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구글, 아마존,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부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들이다.라온시큐어는 이들 기업들과 생체인증 표준을 만드는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대표는 “국내에서도 삼성전자, BC카드 등 4개 회사밖에 오르지 못한 자리”라며 “처음엔 무시당하기 일쑤였던 한국의 중소기업이 쉽게 이야기하면 생체인증 업계에서 ‘IOC 위원’이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이 대표도 모든 사업에서 승승장구만 한 것은 아니다. “사실 본인은 누구보다 실패를 많이 경험한 사람”이라 그는 말한다.

특히, 이 대표가 지금도 뼈아프게 기억하고 있는 사례가 하나 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한 동남아 기업의 상품에 라온시큐어의 FIDO 기반 생체인증 기술을 얹어 출시하려던 계획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된 일이다.

이 대표는 “아무런 문제 없이 쉽게 상품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 국내 기자단을 대상으로 간담회까지 열었다. 하지만 결국 해당 업체의 사정으로 출시조차 하지 못했다”며 “매출 목표 등에 대해 자신 있게 큰소리를 친 상황에 일이 틀어져 굉장한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패가 두려워 도전조차 하지 않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이 대표의 지론이다. 이 대표는 스스로 이런 자세를 가리켜 ‘해커 정신’이라 부른다.

‘돈 되는 새 사업을 가장 빨리 캐치하는 사람’이란 세간의 수식어도 이런 해커 정신 덕분에 얻은 것 같다는 이 대표는 “일단 주저 말고 저질러보자는 생각에 많은 일을 벌여봤고, 10개 중 1개꼴로 성공한 것들이 지금 라온시큐어를 먹여살리고 있다”고 했다.

▶ “죽기 전 제대로 된 사회 공헌 하나쯤은 해볼 것”=이순형 대표에겐 오랫동안 품어온 꿈이 있다. 바로 후배 스타트업들을 위한 ‘키다리 아저씨’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 벤처캐피털(VC) 대표로서 경험했던 멘토로서의 역할을 다시금 구상 중이다.

이 대표의 시선은 국내가 아닌 글로벌 시장을 향하고 있다. 세계로 진출하고자 하는 국내 스타트업을 지원할 수 있는 기관을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하려는 것이 이 대표의 청사진이다.

그는 “단순히 벤처캐피털(VC) 및 액셀러레이터로서 역할을 하는데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현지 시장과 진출할 스타트업을 연결해주는 네트워킹 역할까지 담당하는 ‘진짜 멘토’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밖에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라온시큐어의 앞선 기술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 중이던 그가 최근 주목하는 것은 바로 ‘DID 모바일 신분증’ 발급 사업이다.

“전 세계적으로 공식적인 신분 증명이 되지 않아 교육 및 의료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인구가 10억 명이 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이 대표는 블록체인 기반 DID를 활용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실제로 국제연합(UN)에서도 오는 2030년까지 공식적으로 신분 증명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신분증 발급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UN의 구상이 현실화되기 위해선 DID가 반드시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 대표의 확신이다.

그는 이미 행동에도 나서고 있다. 이순형 대표는 “기업을 키우는 것 외에 DID로 제대로 된 사회 공헌을 해보는 것이 또 하나의 꿈”이라며 “구체적인 방법을 조만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 스타일은 스피드와 역동성=이 대표의 집무실에는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한편에 잘 정리된 모터사이클 모형들이다.

“젊은 시절 취미가 모터사이클을 타며 속도감을 느끼는 것이었다”는 이 대표는 “스피드 있는 것을 지금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 보안 기업의 수장이란 직함 때문인지 차분하고 정적일 것만 같은 이 대표. 이런 타인의 시선과는 달리 그는 역동적인 취미를 갖고 있다.

이순형 대표의 또 다른 취미는 바로 바다 낚시다. 낚시가 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란 이 대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50시간 동안 배를 타고 태평양 한 가운데 나가 보름간 참치 낚시를 하기도 했다”며 10년전 기억을 떠올린 그는 “성격상 역동적인 것이 잘 맞는다”고 덧붙였다. 정태일·신동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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