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수병 100명 이상이 타고 있는 미국의 핵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즈벨트호의 함장이 해군 당국에 탑승자 전원을 격리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서한을 발송한 걸로 파악됐다. 병사 3명이 첫 양성 판정을 받은지 일주일만에 사태가 급격히 악화해 조난신호(SOS)를 보낸 것이다.

31일(현지시간) 미국 일간지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은 브레트 크로지어 루즈벨트호 함장이 해군에 보낸 4장짜리 편지를 전날 단독 입수했다며 이같은 내용을 전했다. 총 4000명 이상 탑승한 이 항공모함은 현재 괌에 머물고 있다.

함장은 편지에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라며 “전쟁 중이 아닌데 선원이 죽을 필요없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가장 소중한 자산인 선원들을 적절히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선(下船)한 일부 감염자를 제외하면 상당수가 배에 남아 있는데, 14일간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함은 공간이 제한돼 있어 (거리두기를) 실행하기 어렵다. 전염은 빠르게 진행 중”이라며 “괌 해안에 승조원 전원을 격리할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빨리 마련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루즈벨트호의 상황을 712명의 확진자를 낸 대형 크루즈선 다이아몬드프린세스보다 더 좋지 않을 수 있다고도 했다.

토머스 모들리 해군장관은 이 뉴스가 전해지자 CNN에 출연, “편지에 대해 들었고, 그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며 “지난 7일동안 선원을 하선시키고 괌의 수용시설로 옮기는 작업을 했는데, 현지에 충분한 병상이 없기 때문에 텐트 같은 시설을 세울 호텔 부지를 쓸 수 있을지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함장 얘기에 반대하진 않는데 항모엔 무기와 항공기, 원자력 발전소 등이 있어 화재가 발생하면 끄는 등 해야 할 일이 있다”며 “매우 우려하고 있고, 적절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크로지어 선장은 “해군이 전투태세 완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바이러스엔 패배하게 될 것”이라며 “수병의 10%는 승선한 채 원자로를 돌리는 등 비상사태에 대비토록 해야 한다”는 대안을 편지에 적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탑승자는 이 항모엔 150~200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있다고 전했다. 홍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