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활용 절세·증여 인기
법제도 영향 사회지도층
오랜 유행에도 단속 미미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춘추시대 제(齊) 영공(靈公)은 남자 옷을 입은 여자를 좋아했다. 보통 시호에 ‘靈’을 쓰면 뚜렷한 업적이 없거나, 뭔가 사고를 쳤던 임금이란 뜻이다. 색다른 취향을 가졌던 것을 보면 영공도 그리 똑똑한 임금은 아니었던 듯 싶다.
여하튼 임금의 취향에 따라 궁내 여인들이 남자 옷을 입고 다니자, 여염집 여인들 사이에서도 남자 옷을 입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당시는 남녀가 유별하고, 예법도 엄격했던 시기다. 남장이 유행하면 자칫 사회질서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영공은 대대적인 단속을 명령한다. 엄청난 수의 단속원이 동원돼 여자들이 입은 남자 옷을 찢고 허리띠를 끊었다.
그런데 단속을 아무리 엄하게 해도, 남장 유행은 계속됐다. 결국 영공은 고민 끝에 지혜롭기로 소문난 안자(晏子)를 부른다. 안자의 해결책은 간단했다.
“궁내 부인들의 남장은 놔두고 밖의 백성들에게만 금지하니, 이는 마치 바깥 문에 소머리(牛頭)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말고기(馬肉)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
영공은 즉시 궁 내에도 여인들의 남장을 금지했다. 이어 채 한 달이 안돼 남장 유행은 사라졌다. ‘표리부동(表裏不同)’, ‘속이다’는 뜻의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유래다.
기업은 기업인데, 생산적인 역할이 아닌 일부 개인의 편법 자산관리를 위한 기업들이 성행하고 있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 동안 제대로 단속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최근의 단속도 솜방망이다.
박근혜 정부 때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가족기업 ㈜정강을 통해 절묘한 자산관리 실력을 자랑했다. 최근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스타항공 대주주인 이스타홀딩스를 통해 오묘한 증여 기법을 선보였다. 모두 법인이라는 투자기구(vehicle)를 잘 활용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법과 제도’를 주무르는 지도층의 자산관리 전략을 보면 정말 ‘법과 제도’를 잘 활용하는 실력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얼마전 나온 6·17 부동산 대책에서도 법인을 통한 부동산투자 규제는 그리 과격하지 않았다. 주택담보대출 금지는 주택매매·임대사업자에만 제한했다. 양도세율도 기본 법인세율을 20% 높이는 데 그쳐 여전히 개인 보다 낮은 세율을 유지했다. 종부세율 공제인상도 임대주택에 한정되고, 6월18일 이전 분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 되지 않는다.
정부가 추진 중인 금융투자소득과세 방안도 비슷해 보인다. 개인이 아니라 법인을 동원하면 유리한 게 한 둘이 아니다. 법인 실효세율이 금투소득세 기본세율(20%) 보다 낮아서다. 결손금 이월공제 기한도 개인은 3년인데, 법인은 10년이다. 여당 내에서도 이월공제 기한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의 엄청난 차이다.
정부는 법인이 얻은 이익을 주주가 배당으로 받으면 세 부담이 더 높아진다고 하지만, 가족기업이 굳이 배당을 할 이유가 없다. 그냥 법인 비용으로 개인이 사용하면 된다. 이자 소득세를 줄이려고 개인 돈도 자기 회사에 빌려주는 상황이다. 정부가 배당 운운하는 건 현실을 모르거나 가족법인의 편에 서고 싶은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법인카드로 생활비 쓰고, 법인 돈으로 산 고가 차량을 가족들이 사적으로 이용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비상장 법인이면 상속·증여도 쉽다. 비상장회사 주식가치 측정은 고무줄이다. 상속·증여 시점에서 손실을 키워 기업가치를 떨어뜨린 후 싼 값에 주식을 넘기면 된다.
제도를 고치면 자칫 선량한 중소기업들에까지 피해가 갈 수 있다. 개별 법인을 상대로 당국이 단속하려 들면 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많은 곳들을 모두 들여다볼 수도 없다.
어려운 문제지만 결국 해결은 정부 몫이다. 확실한 대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가족법인을 활용한 다양한 자산관리 전략은 계속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