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저희야 다양한 스마트폰 라인업을 갖추는 게 더 좋죠. 그런데 국내 제조사들의 외산폰에 대한 견제가 상당해요. 일부 제조사는 외산폰 관련 테스크포스(TF) 팀까지 꾸려 국내 진출을 모니터링할 정도입니다.”
국내 시장에 더 다양한 외산 스마트폰을 들여올 계획이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국내 제조업체들이 ‘안방’을 사수하기 위해 스마트폰 물량을 앞세워 눈치 아닌 눈치를 주고 있단 것이었다. 국내 제조사들이 외산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단 말은 바꿔 말해 그만큼 외산폰의 공세가 거세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은 대표적인 ‘외산폰 무덤’이다. 그동안 많은 외산폰들이 국내 시장에 도전장을 냈지만,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잊힌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2012, 2013년 HTC, 블랙베리, 모토로라 등은 국내 시장에서 발을 뺐다. 소니도 현재 철수 타이밍을 보고 있고, 중국폰도 여전히 국내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외산폰 중 유일하게 선전 중인 애플의 아이폰도 다른 해외 시장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애플은 일본 시장에선 절반에 달하는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고, 중국에서도 삼성전자를 앞지르고 있지만, 유독 한국 시장에선 삼성전자(68%)에 크게 밀려 16%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는 모양새다. 중국폰의 공세가 활발하다. 특히 샤오미는 2017년 4월 미믹스, 미A1 등을 선보인 이래 최근까지 50만원 미만의 중저가폰을 앞세우는 전략으로 끊임없이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올해는 본격적인 한국 진출의 원년으로 삼고 첫 5G(세대) 스마트폰까지 출시했다. 소비자들 반응도 예전과 사뭇 다르다. 앞서 출시한 홍미노트9S 사전예약 물량 2000대가 이틀 만에 완판됐다.
콧대 높던 애플도 가성비 전략을 취하며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4년 만에 중저가 아이폰, 아이폰SE를 출시했고, 올해 하반기 출시될 아이폰12도 전작보다 큰 폭으로 가격을 낮출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 5월 출시된 아이폰SE는 별다른 홍보 없이 같은 달 출시된 국내 중저가폰을 모두 압도했다.
국내 제조사들의 행보는 이와 대조적이다. 소비자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어선 높은 가격으로 비판받고 있다. 갤럭시S20 시리즈가 그랬고, LG벨벳도 마찬가지였다. 두 제품 모두 공시지원금이 늘어나자 비로소 판매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10여년간 이어진 국산 스마트폰에 대한 소비자들의 높은 충성은 단순히 애국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높은 품질 대비 합리적 가격, 이른바 ‘가성비’로 일군 결과다. 국내 소비자들이 불편을 감수하면서 샤오미폰을 직구하는 이유 역시 가성비 때문이다.
보급형 아이폰과 샤오미의 선전을 보면, 국내 소비자가 앞으로도 국산 스마트폰만 선호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소비자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소비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견제만이 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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