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만 늘어나 꼼수증세 의혹
투기근절 공공복리 부합해도
재산권 제한은 합법적 절차로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춘추시대 말 명품 신발을 좋아하던 제(齊)나라 경공(景公)과 재상 안영(晏嬰)과의 대화다.
“안공, 좋은 집에서 살지 왜 그런 허름한 곳에서 사시오”
“아비 때부터 원래 살던 곳이어서 그냥 삽니다”
“그럼 시장 잘 알겠네. 요즘 시장에서 잘 나가는 신발이 뭐요”
“용(踊)이 비싸고, 구(屨)가 쌉니다”
용(踊)은 발 뒷꿈지를 잘리는 형벌을 받은 이들이 신는 신발이다.구(屨)는 일반 보통 신발이다.
경공 때 제나라는 형벌이 무겁기로 유명하던 때다. 경공은 군실의 위험과 국가의 질서를 엄한 형벌로 다스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결국 죄인만 잔뜩 늘었다. 안영이 이를 비꼬아 지적한 셈이다. 경공은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즉시 형을 가볍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사실 경공은 그리 영명한 군주가 아니었지만, 안영 덕분에 ‘경(景)’이란 나쁘지 않은 시호를 받을 수 있었다.
최근 재산세 납부고지서를 받은 가구들 가운데 마음이 불편한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이른바 ‘징벌적’ 세금이 도입된다고 하니 앞으로 집을 가진 사람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할 전망이다. 주택 취득•보유•양도 전 단계에 ‘폭탄’을 설치해 실거주 소유자가 아니면 도저히 견딜 수 없게 하겠다는 정부와 여당의 의도다. ‘징벌’ 대상이 된 불법을 저지르지 않은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도 어느새 ‘악의 축’이 되어 버렸다.
‘징벌적’ 세금, 과연 헌법정신에 일치 하느냐를 따질 필요가 있다. 우선 ‘징벌적’ 세금이다. 법치주의에서 금전적 징벌은 대상이 개별적인 과태료나 벌금 형태가 바람직하다. 대상이 포괄적인 세금이 처벌의 수단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재산을 많이 소유했다고 징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정부와 여당은 그동안의 부동산 정책이 분명 다주택자를 겨냥해왔다고 하지만, 실수요자나 1주택자의 부담도 늘어왔다. 집값은 오르는데, 돈 빌리기는 어려워져 중산층 서민의 내 집 마련은 더욱 어려워졌다. 내 집만 가진 1주택자도 세 부담이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쯤되면 정부의 의도가 의심스러워진다. 정치인들이야 여론에 편승해 앞다퉈 집값 잡기 완장을 차는 것이라고 치자. 경제를 좀 안다는 담당 공무원들은 왜 무리한 대책에 맞장구를 칠까? 공무원의 근무처는 행정부이고, 세금이 주수입원이다. 세금을 더 걷으면 매출이 늘어난다.
선진국 대비 복지수준이 아직 낮고, 코로나19 지원과 한국형 뉴딜 등 정부 지출이 늘어날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증세 없이는 감당하기 어렵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적자국채를 대거 발행하더라도 결국 나라 빚이다. 부동산 관련 세금 강화가 ‘오비이락(烏飛梨落)’일까?
납세자 연맹이 최근 추정한 부동산 관련 세수를 보면 2018년이 55조2000억원이다. 전 정부 때인2016년 46조6000억원 대비 18.5% 늘었다. 물론 국세와 지방세가 합해진 수치지만 올해 국세수입 전망액이 260조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헌법 23조는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하도록 했다.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게 했다. 35조는 국가에 주택개발정책등을 통해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정한다.
어려운 계층을 돕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지만 그렇다고 재산과 소득이 많다고 사회적 비용을 더 많이 감당하라는 것은 자본주의는 물론 민주주의 정신에도 어긋난다. 법을 어기며 돈을 번 것은 처벌해야지만, 합법적으로 쌓은 부가 징벌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직 다주택자 때문에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이 그래도 어렵다면 ‘차라리’, ‘차라리’ 법령으로 재산권을 제한하자. 조정지역에서는 법으로 아예 다주택 소유를 금지하고, 이미 초과해 소유한 주택은 정부가 ‘정당한 보상’을 하고 사들이자. 그리고 공공임대를 주거나 무주택자에 재매각하면 된다. 재원이 문제라면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 등 정부가 연금지급을 보장하는 자금들도 이용할 만 하다. 이렇게 되면 재건축•재개발에 복잡한 규제를 둘 이유도 사라진다.
가혹한 정치가 처음부터 가혹했던 것은 아니다. 형벌과 제도가 엄격해지는 데도 질서가 제대로 수립되지 않아 더 강경한 수단을 동원하다 가혹한 수준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가혹함은 반발을 부르고, 반발을 누르기 위해 다시 더 가혹해지게 된다. 형벌로도 문제 해결이 잘 되지 않는다면 애초부터 처방이 잘못됐는 지를 되돌아 보는 게 현명해 보인다.
전국시대 위(魏) 문후(文侯) 때 서문표(西門豹)는 홍수를 두려워해 강물에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지방을 맡게 된다. 서문표는 처녀 대신 무당들을 제물로 바치고, 다시 바쳐진 무당을 되찾아 오라며 그 제자들을 수장시켰다.
서문표는 부임한 후 무당에게 다음에는 더 나은 처녀를 하백에게 첩으로 바치겠다고 말하고 오라면서 무당을 수장했고, 그후에는 무당이 오지 않는다고 무당을 모셔오라며 4명의 제자를 수장시켰다. 그리고 수장한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면서 세 장로까지 수장시켰다. 그런 다음, 하백에게 첩을 바치는 관습을 없애고, 하백의 보복을 우려하여 12개의 수로를 만들도록 했다. 하백은 파도를 일으켜 지방을 물에 잠그려 했지만 파도는 12갈래의 수로에 흘러들어, 오히려 백성들의 논밭에 물을 대주어 버렸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