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EU 최대위기에서 대응책 마련"
[헤럴드경제]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7500억 유로(1030조 원) 규모 경제회복기금에 합의했다. 나흘에 걸친 마라톤협상 끝에 도출한 예산안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왼쪽)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21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나흘간의 EU 정상회의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U 정상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한 이후 처음으로 대면(對面) 회의를 갖고 EU 장기예산안과 코로나19 회복기금 등을 논의했다. 연합뉴스 |
21일(현지시간) AP,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이날 새벽 7500억 유로의 경제회복기금과 1조 740억 유로(약 1472조 원)의 장기예산안에 합의했다. 예산안은 2021~2027년으로, 향후 7년의 예산을 반영한다. 기금 중 3900억 유로(약 534조 원)는 갚을 필요가 없는 보조금으로 편성됐고, 3600억 유로(493조 원)는 상환을 해야 하는 대출금으로 지원된다.
EU경제회복기금은 EU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가 높은 신용등급을 이용해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코로나19 피해가 큰 회원국을 지원하기 위해 조성됐다. EU가 대규모의 공동채권 발행에 합의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기금조성에 대한 필요성은 지난 5월부터 제기됐지만, 유럽 내 검소국가로 꼽히는 5개 북유럽국(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이 보조금의 비중을 낮춰야 한다며 반대해 교착상태에 빠졌었다. 당초 EU 집행위와 샤를 미셸 EU 상임의장은 7500억 유로 기금 가운데 5천억 유로는 갚을 필요가 없는 보조금으로, 나머지는 대출로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달 초 5개국이 보조금의 비중에 대해 양보할 의사를 내비치면서 긍정기류가 조성됐다. EU집행위도 보조금 규모를 초안보다 축소하기로 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이뤄진 이번 정상회의는 17∼18일 이틀 일정이었지만 밤샘 협상에도 기금 구성과 조건 등을 놓고 회원국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이틀 연장돼 나흘째 회의에 이르게 됐다. 결국 닷새째 되는 날 새벽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졌다. 2000년 프랑스 니스에서 있었던 5일간의 정상회의 이래 가장 긴 회담이다.
이번 기금지원은 경제 개혁, 기후변화 대응, 법치주의 존중 등의 조건을 달고, 지원을 받는 회원국이 이를 따르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EU 다수 회원국의 결정에 따라 지원에 제동을 걸 수 있도록 했다.
네덜란드 등은 예산환급금(rebates)을 더 받게 됐다. 예산환급금 제도는 EU 예산 부담 규모가 수혜 규모보다 큰 국가의 부담 완화를 위해 예산 분담금을 감액 조정하는 제도다.
EU가 유례없는 대규모 채권발행을 담고 있는 이번 합의안은 유럽의회의 비준을 필요로 한다. 비준은 이르면 23일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번 합의에 대해 "EU가 마주한 최대 위기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했다"라고 밝혔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의 역사적인 날"이라고 평가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유럽을 위한 '마셜 플랜'(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서유럽 원조 프로그램)"이라고 환영했다.
onlinenew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