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7대책 이후 오름세 가팔라져
전세수급지수 4년여 만에 최고치
실거주 의무 강화·월세 전환 영향
매물 감소 속 임대차3법도 부담
강·남북 가리지 않고 수억씩
서울 마포구 아파트 밀집지역의 모습. [헤럴드경제DB] |
“요즘 매매시장에선 ‘패닉바잉(Panic Buying·공황구매)’이 있다면서요? 그런데 전세시장은 매물도 없는 데다 가격이 올라 바잉을 못하니 패닉이 와요. 그래도 필요하면 계약해야지 어쩌겠어요….” (서울 마포구 염리동 인근 A공인중개사)
정부와 여당이 ‘임대차 3법(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계약갱신청구권)’을 유예 기간 없이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서울 전세시장 흐름이 심상치 않다. 집주인이 실거주 요건을 채우려고 직접 들어와 살거나 전세를 월세로 돌려 매물이 부족한데, 임대차 3법 통과 전 보증금을 올리려는 움직임까지 겹치면서 전셋값이 치솟고 있다.
27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잠원동 래미안신반포팰리스 84㎡(이하 전용면적)는 지난 16일 16억원에 전세계약이 이뤄졌다. 지난 5월 최고 13억5000만원에 거래됐던 데서 2억5000만원 뛴 가격이다. 반포동 반포래미안아이파크 84㎡는 같은 날 13억8000만원에 전세계약됐는데, 현재 나온 매물의 호가가 15억원 수준까지 올랐다.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전세(84㎡)도 이달 16억원에 거래를 마쳤다.
강북 주요 지역에서도 84㎡ 전셋값이 10억원을 향해 가고 있다. 마포구 용강동 래미안마포리버웰에선 84㎡ 전세매물이 10억~11억원에 나왔다. 지난 21일 8억9000만원에 계약됐던 것과 비교하면 1억원 이상 뛴 가격이다. 주변 e편한세상마포리버파크 역시 10억원에 매물이 나왔다. 두 단지 모두 전세매물이 1, 2개에 그친다. 성동구 옥수동 e편한세상옥수파크힐스·래미안옥수리버젠은 최근 호가가 9억원을 넘어섰다.
시장 곳곳에선 매물이 귀해진 탓에 전세는 ‘부르는 게 값’이 됐다는 말이 나온다. 공인중개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올 들어 양도소득세 비과세를 위해 실거주를 택한 집주인이 늘어난 가운데 청약 대기와 학군 이동, 정비사업 이주 등으로 전세 수요는 꾸준히 이어졌다.
여기에 부동산 규제로 집주인의 실거주 의무가 강화된 데다 보유세 부담을 덜기 위한 반전세·월세 전환이 늘면서 거래 가능한 전세매물이 크게 줄었다. 6·17대책에서는 새 아파트 분양권을 받으려면 2년 실거주해야 하는 요건이 신설됐고, 7·10대책에선 다주택자의 세 부담을 강화하는 내용 등이 발표된 바 있다.
이런 와중에 임대차 3법이 시행되기 전 보증금을 올려받으려는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전셋값이 요동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전·월세 계약을 갱신할 때 임대료를 직전의 5%를 초과해 올릴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올려놓는 것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은 이달 20일까지 56주 연속으로 오름세를 이어갔다. 올 들어 매주 0.01~0.05% 수준으로 오르다가 6·17대책을 기점으로 상승폭을 확대해 이번주에는 0.12% 올랐다. 올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의 누적 상승률은 1.66%로, 매매가격 상승률(0.34%)을 한참 앞섰다.
KB부동산 리브온이 파악한 전세수급지수(20일 기준)를 보면, 서울은 180.1을 기록해 2015년 11월 9일(183.7)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새 아파트 입주에 따른 전세물량 확보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8월에는 수도권에서 1만9315가구가 입주하지만 중대형 비중이 비교적 높은 편이고, 9~10월부터는 입주물량이 줄어 전세시장 안정화에 도움이 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내년 서울의 아파트 입주물량은 올해의 절반 수준인 2만5000여가구로 추산되고 있다.
양영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