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자산 동시규제 유일
형평성 논란 가능성 변수
유배당계약 실익 적을 듯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보험업법 개정을 재료로 삼성생명 주가가 요동치고 있다. 거대 여당이 내놓은 개정안으로 법이 바뀌면 마치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한꺼번에 몽땅 팔아야 하는 것처럼 내용이 알려지면서다. 보험업법 개정을 재료로 삼성생명 주식에 큰 기대를 걸기에는 아직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아 보인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와 직결되는 현안인 만큼 법 개정 과정에서 추가 논의가 필요하고, 설령 법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삼성 측 대응 전략을 현재로썬 예단하기 어렵다. 세간에서 예상하는 효과나 파장이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도 상당하다.
국제금융회계기준(IFRS)에서 금융회사가 자산을 시가(市價)로 평가하는 것은 대세다. 보험업법에서만 자산 운용 제한 요건에 취득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반대론자들은 오히려 보험업법의 특수관계인 거래 제한 기준을 따지고 들 가능성이 크다.
▶보험만 자본·자산 ‘이중잣대’ 논란일 수도=현재 보험업법은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발행한 증권의 편입비율을 자기자본의 60%, 또는 총자산의 3% 이내로 제한한다. 자기자본의 60%보다 액수가 크면 3% 룰이 우선 적용된다. 유독 특수관계인 신용공여와 증권 취득의 자산 내 한도만 일반계정과 특별계정의 기준이 같다.
올 6월 말 기준 삼성생명 보유 삼성전자 지분 장부가는 26조8307억원이다. 개별 기준 자기자본 33조1660억원의 60%(19조8996억원)를 초과, 총자산 291조3309억원의 3%(8조7399억원)를 넘는다. 자본과 자산 기준이 동시 적용되면서 허용치의 차이가 배 이상 벌어진다.
금융업권의 특수관계인 발행 증권의 소유 제한 기준은 대부분 자기자본이다. 은행 1%, 금융투자회사 8%, 여신금융사 150%다. 자산 기준은 자산운용사, 즉 집합투자업자뿐이다. 자산운용사는 전체 운용자산의 5%, 개별펀드의 25% 이내에서 계열사가 발행하는 지분 증권을 취득할 수 있다. 단 해당 계열사의 시가총액이 증시의 5%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시총 내 비중까지 취득하도록 허용한다. 현재 코스피 시총 비중 5% 초과 종목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이중잣대’ 해소, 금융그룹통합감독 지렛대(?)=자산운용의 제한을 자기자본과 자산 등 2가지 기준을 복합해 적용한 곳은 보험뿐이다. 사실 고객이 맡긴 자산을 잘 운용해 돌려준다는 점에서 보험업과 자산운용업은 꽤 닮았다.
자기자본 기준만 적용한다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보유 지분 가운데 13조원어치만 팔면 된다. 자산운용업과 마찬가지로 자산(국내) 내 비중을 시총 비중만큼 가져간다면 여전히 15조원가량의 여유를 갖게 된다. 현재 국민연금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가치도 약 40조원으로, 국내 주식의 31%. 국내 주식과 채권(약 472조원)의 8.5%에 육박한다. 보험업법 개정 과정에서 장부가로 기준을 바꾸되 타 금융권과의 형평을 고려해 허용 기준을 바꾸는 대안이 제시될 만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현재보다 허용치가 늘어날 수도, 오히려 더 줄어들 수도 있다.
이번 보험업법 개정안은 유독 삼성에만 적용된다. 정부도 일반 법령을 바꾸면서 특정 집단을 겨냥한다는 지적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장부가 기준을 얻고, 자본 또는 자산 내 한도를 조정하면 오히려 금융그룹통합감독법 통과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 현재 삼성생명 국내 운용자산 내 삼성전자 비중은 20%지만 주식 자산 내 비중은 무려 95.6%다. 금융그룹통합감독법안은 삼성뿐 아니라 다른 대기업집단에도 적용된다.
▶매각 차익?…유배당 수혜 제한적=삼성 입장에서 설령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돼도 대응 전략이 없지 않아 보인다. 여러 해에 걸쳐 나눠 팔면 된다. ‘7년설’이 유력하다. 삼성물산이 인수할 가능성이 가장 큰데, 부채를 늘려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이면 지주사 강제 전환 요건을 피할 수 있다. 예전 삼성카드가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처분했듯 KCC와 같은 우호세력에 일부 넘길 수도 있다. 소유권이 바뀌는 신탁에 맡기는 방안도 가능하다.
지분 매각 차익이 유배당 계약자들에게 배당될 것이란 기대도 어렵다. 매각 차익은 우선 역마진 손실(과거 고금리 확정금리상품과 현재 자산운용 수익률과의 차이로 부채로 분류됨)을 상쇄하는 데 쓰일 가능성이 크다. 2018년에도 삼성생명은 1조1700억원어치 삼성전자 주식을 팔았는데, 매각대금 가운데 7000억원을 유배당 연간손실액을 공제하는 데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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