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등 디지털 콘텐츠, 방심위 대상 아냐
연령등급 등도 자율 규제…“외부기관 제재 필요”
반복되는 논란에도 매번 “개선하겠다” 뿐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월 6000만명이 보는데…기준은 깜깜이, 규제는 전무(全無)?”
웹툰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작가들의 필터링 없는 혐오 표현이 도마 위에 올랐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최근 문제가 된 네이버웹툰은 지난해에도 장애인 비하, 이주노동자 차별 등으로 문제가 됐다.
K-콘텐츠의 대표 주자인 웹툰의 시장 규모와 구독자 수는 기하 급수적으로 커졌다. 그러나 적절한 규제 없이 내부 자율에만 맡겨져 있어 사실상 ‘무법지대’다. 업계 안팎에선 최소한의 외부 가이드라인이라도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국내 웹툰 시장 규모는 올해 약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15년 4200억원에서 5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업계 1위인 네이버웹툰의 월간실사용자수(MAU)는 6000만명을 넘는다. 지난해 IPTV 가입자수가 1713만명임을 감안하면, 방송·통신 콘텐츠보다 이용자가 더 많다.
그러나 인터넷 콘텐츠란 이유로 제재는 허술하다. 드라마, 예능 등 방송 콘텐츠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제재 대상으로,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그러나 웹툰을 포함한 디지털 콘텐츠는 이를 심의할 외부 기관이 전일무이하다. 방심위의 심의 대상도 아니다. 각 사업자의 내부 자정시스템에 온전히 맡겨진 상황이다.
연령 등급도 자율적으로 정한다. 현재 웹툰에 표시된 “~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라는 문구는 만화가와 웹툰 작가로 구성된 웹툰자율규제위원회에서 자체적으로 규정한 ‘웹툰 연령등급분류를 위한 자가진단표’에 기반한다.
등급분류 기준은 주제, 폭력, 선정성, 언어, 약물, 사행성, 모방위험, 차별 등 8개이다. 그러나 어겼다고 불이익은 없다. 참고할 수준의 자가진단표일 뿐이다. 방송 콘텐츠가 연령별 등급을 엄격히 정하고, 이를 어길 시 징계를 받는 것과 대조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웹툰 업계에선 이번 ‘기안84’ 사태에 대해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웹툰의 혐오·폭력 표현은 사전적으로, 사후적으로도 막기 힘든 시스템”이라며 “콘텐츠 영향력과 책임은 점점 커지는데 체제가 못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된 웹툰 ‘복학왕’ 장면 [네이버웹툰 캡처] |
최근 논란이 된 ‘기안84’의 웹툰 ‘복학왕’의 여자주인공은 회식 자리에서 큰 조개를 배에 얹고 깨부순 뒤 40대 노총각 팀장으로부터 정사원으로 채용된다. 일부 독자들은 해당 장면에 대해 스펙이 부족한 여성 인턴이 남자 상사와 성관계를 가진 뒤 정직원이 된 듯한 내용이 묘사됐다며 작가를 비판했다. 지난 19일에는 만화계성폭력대책위원회 등 8개 단체가 복학왕 연재를 중단해달라며 네이버 이용자 1167명의 서명이 담긴 요청서를 네이버 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지난 1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웹툰 본사 앞에서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 만화계성폭력대책위원회 등 회원들이 기안84 웹툰 '복학왕' 연재 중단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
이에 네이버 웹툰은 웹툰 편집 가이드라인 및 관련자 관점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네이버 웹툰의 사전 심의는 ‘웹툰 연령등급분류를 위한 자가진단표’ 등을 기준으로 시대 정서를 반영하는 방안으로 운영됐다.
검수 메뉴얼은 비공개다. 그러나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면서 기준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매번 “개선하겠다, 보완하겠다”라고 답한 바 있어, 이번 대책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독자들은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한편, 네이버 웹툰과 다음 웹툰은 간행물 윤리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인터넷 내용 등급 서비스를 기반으로 내부 심의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다. 구체적 심의 기준은 비공개지만, 수십장에 달할 만큼 방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jakmee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