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보호 정책 필요
규제헛점 ‘괴물’ 낳을수
사모펀드 ‘반면교사’로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한때 세계 에너지시장의 제왕이자, 미국의 상징이었던 엑손모빌(Exxon mobile)이 다우존스지수에서 밀려났다. 이제 과거 엑손모빌의 영광은 애플, 아마존, 구글 등 플랫폼 기업들이 차지했다.
엑손모빌의 전신(前身)은 ‘석유왕’ 존 록펠러가 세운 정유회사 ‘스탠더드오일’이다. 록펠러가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은 정유업이지만 진짜 큰돈을 만지게 된 것은 ‘철도왕’이자 ‘선박왕’이던 코르넬리우스 벤더빌트와의 결합을 통해서다. 록펠러는 석유의 생산과 유통을 모두 장악하면서 경쟁사들을 무너뜨렸고 사실상 에너지 독점기업이 됐다. 미국 의회는 스탠더드오일을 겨냥해 1890년 ‘셔먼 법’을, 1914년 ‘클레이턴 법’을 제정한다. 연방거래위원회법과 함께 ‘반독점 3법’을 이루게 된다.
얼마 전 미국 의회는 반독점 의혹을 받는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구글 등의 대형 IT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소환했다. 미국 경제의 근간이 에너지산업에서 IT산업으로 전환하면서 반독점 규제 대상도 바뀐 것이다. 이젠 재화가 아닌 서비스도 독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금융의 화두로 ‘생산적 금융’과 ‘포용적 금융’이 제시된다. 생산적인 분야로 시중 자금을 공급하고,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를 펼쳐야 한다는 정책 방향이다. 경제관료 집단인 금융위의 반응은 ‘핀테크’였다. 4차 산업혁명 지원, 소비자 편의 증진을 꾀할 수 있다는 명분이었다. 정보통신기업(ICT)의 금융 진출이 대거 허용되고 장려됐다. 소규모 스타트업과 함께 대기업인 카카오까지 금융업에 뛰어들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금융 규제 완화가 진행되는 절차를 ‘정치권 또는 업계의 규제완화 요구→금융위(모피아)에 하청(정치권) 또는 로비(업계)→법안(의원 입법) 발의 및 찬성 여론 조성’이라고 설명했다. 외환위기 직후 설립된 국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상당수가 정치권 실세나 경제관료가 얽혀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금융업 인가는 받지 않고, 사실상 금융 관련 서비스를 하려는 네이버에 대해 금융위가 금융소비자 보호법을 적용하지 않을 듯하다. 시행령으로 적용 가능한 데 하지 않으려는 게 분명하다.
인터넷 검색시장과 미디어 플랫폼의 독점기업이 금융 서비스에까지 진출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자칫 정부 다음으로 국민에 대한 통제력이 강한 곳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행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이를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사업의 과실을 누리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지게끔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 금융소비자보호법 9조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국가의 책무로 규정하고 있다. 소비자를 보호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하는 게 정부의 의무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12월 금융위원회는 사모펀드 운용사 설립을 자유화하고, 운용 요건 및 투자 자격을 완화했다. 동시에 금융위는 투자 요건 완화와 함께 사모펀드 판매 시 적합성·적정성 원칙 적용을 면제하면서 ‘소수전문가’에게만 판매되는 특성을 감안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사모펀드의 모든 족쇄를 푼 셈이다.
사모펀드 규제 완화 불과 5년여 후인 지난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라임펀드 사기사건이 발생하면서 무소불위(無所不爲)로 떼돈을 벌어들이던 사모펀드들의 민낯이 드러난다. 피해자들은 ‘소수전문가’들이 아닌 국민 상당수였다. 다시 ‘괴물’을 만들 수는 없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