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유동현 기자] “‘소녀재판’ 연재 중지시켜주세요”
네이버 웹툰 〈소녀재판〉연재를 중단해달라는 요구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장했다. 이 웹툰은 지난해 10월 네이버 웹툰 ‘지상최대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러나 선정적 내용이 도마 위에 올랐다. 〈소녀재판〉은 주인공 여자 고등학생이 남자 주인공의 약점을 빌미로 키스 등 성폭력을 가하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이에 한 이용자가 “성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 이를 통해 그릇된 성가치관을 가질까 우려”하는 청원 글을 올린 것이다. 최근 기안84 〈복학왕〉과 9년여 간 연재한 〈헬퍼〉도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소녀재판〉연재 중단 요구는 7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작성자는 “저는 성평등 문제에 관심이 많은 학생입니다”로 시작하는 글을 올렸다.
이어 “학교 남자 주인공의 비밀을 알게 된 여자 주인공이 비밀을 빌미로 성적인 스킨십을 요구하며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라며 “교복을 입은 미성년자에게 키스를 요구하는 여주인공 모습이 얼마 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n번방 성착취 범죄자들과 매우 닮아 보이는 건 저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또 “성인 열람 제한도 걸려 있지 않다”며 “성적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이 이같은 성범죄적인 내용의 웹툰을 보고 잘못된 성가치관을 가지게 될까 너무 두렵습니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소녀재판〉 연재 중단 청원글[청원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쳐] |
해당 청원은 당시 2000명이 넘는 동의에 그쳤다.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최근 기안84 〈복학왕〉의 여성혐오 논란 이후 다시금 〈소녀재판〉에 대한 문제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만화 커뮤니티 내 일부 이용자를 중심으로 “기안84의 장면이 문제라면 이 장면 또한 엄연히 문제”라는 지적이 공감을 얻고 있다.
〈소녀재판〉은 네이버가 2019년 웹툰 ‘지상최대공모전’을 열고 대상을 수여한 작품이다. 네이버 웹툰은 매해 공모전을 열고 재야 웹툰 발굴에 나서고 있다.
네이버 웹툰은 해당 작품을 음침하고 열등감 가득한 주인공이 뜻밖의 사건을 목격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내용이라고 소개했다.
2019년 네이버 웹툰 공모전을 통해 대상을 받은 〈소녀재판〉[네이버 웹툰 제공] |
당시 “공감할 수밖에 없는 감정선과 참신한 주제는 물론, 10대들의 사실적인 심리와 높은 몰입감이 돋보였다”는 심사평을 받았다.
네이버 웹툰 관계자는 “공모전은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작품 발굴 취지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최근 〈소녀재판〉에 대해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서로의 약점을 쥐고 있는 관계 간의 심리묘사에 집중한 작품이라고 판단했다”며 “시놉시스와 캐릭터 등을 통해 파악한 작품 전체의 방향성을 고려해 주인공의 도발적인 행동이 미화되거나 당연한 것으로 묘사된 것은 아니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소녀재판〉에 대한 문제제기는 ‘남성이 피해자면 넘어가도 괜찮냐’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네이버 웹툰에 연재 중인 〈여주실격〉도 논란에 올랐다.
해당 작품 내 연예인 지망생 남자 주인공이 여성에게 성상납을 암시하는 장면 등이 등장한다. 기안84〈복학왕〉 여주인공이 남자 상사와 성관계를 통해 취업에 성공한다는 암시 장면을 올려 뭇매를 맞은 것과 다르지 않다는 이유다.
만화 커뮤니티 게시글 캡쳐 화면 |
이 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와 공감을 나타냈다. 김유창 전 웹툰산업협회장은 “시대가 바뀌었고 성인지감수성 자체가 예전과 달라진 건 분명하다”면서 “다만 규제가 아닌 자율규제를 통해 내부적으로 자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앞으로는 성폭력의 해학성 자체에 집중해 모든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쪽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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