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해석 하나둘 나오지만 법조계 의견은 ‘글쎄’
집주인 매각부터 직계존비속 확인, 공실 등 논란
내용증명 요구하라?…입증 책임은 세입자가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새 임대차법이 시행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이를 둘러싼 집주인(임대인)과 세입자(임차인)의 갈등과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양측이 이전보다 더 많은 협의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봤으나, 현장에서는 법 자체에 구멍이 많은 탓에 협의 자체가 어렵다는 호소가 이어진다. 정부가 내놓은 일부 해석은 ‘현실을 모르는 얘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애매한 개별 사례는 시간을 두고 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나 법정에서 시비를 가려야 하는 상황이어서 당사자들은 속만 태우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송파구 일대 부동산 중개소의 모습 [연합뉴스] |
7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새 임대차법을 둘러싼 갈등 사례가 온라인 커뮤니티, 각종 민원·청원사이트에 속속 올라오고 있다. 모호한 법 규정으로 집주인이나 세입자가 답답함을 호소하는 글이 많다. 대한법률구조공단 등에도 관련 분쟁조정 신청이 접수되고 있다.
일례로 세입자인 A씨는 전세계약 만료 5개월 전 “더 살고 싶다”며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했으나, 집주인이 “내가 살겠다”며 실거주 의사를 밝혀 퇴거 준비를 하게 됐다. 새 임대차법은 집주인의 실거주를 계약갱신 거절 사유로 인정하므로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A씨는 자신이 거주하던 집이 온라인 부동산 매물 사이트에 나온 것을 확인하게 됐다. 그는 집주인이 실거주를 핑계로 자신을 내보내고 집을 팔려는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위법 여부를 관계 기관에 문의했으나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국토교통부는 일단 집주인이 실거주하지 않는다면 ‘허위의 갱신거절’이므로 임대차법 위반 행위라고 봤다. 하지만, 임대차법상 손해배상에 해당하는지는 불분명한 상태다. 임대차법이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경우로 ‘제3자에게 임대한 경우’는 명시했으나, ‘다른 사람에게 주택을 매도한 경우’는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민법상의 불법행위는 따져볼 수 있겠지만, 입증 책임이 세입자에게 있는 데다 집주인의 사정 변경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손해배상 소송까지 가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정인국 한서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집주인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집을 팔았다고 주장하고 이를 소명하면 세입자가 더 할 수 있는 조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서울스카이에서 관람객들이 일대를 내려다보고 있다. [연합뉴스] |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고 세입자를 내보내고 ‘공실’로 비워두는 경우 역시 애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민등록만 옮겨두거나, 가끔 한 번 들리는 것도 실거주로 인정할 수 있는지 논란이다. 정부 관계자는 “실거주와 관련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매일’ 사는 건지 등 다 규정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계약갱신 거절 사유로 인정되는 ‘직계존비속의 실거주’ 역시 혼란을 더하는 사례다. 기존 세입자가 주택의 확정일자 정보를 열람해도 등록된 사람이 집주인의 직계존비속인지 알 길이 없다. 국토부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실거주자 정보에 대한 내용증명을 요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법조계는 임대차법 어디에도 이와 관련된 의무는 없다고 지적했다.
난관에 봉착한 집주인도 적지 않다. 특히 정부가 매매와 관련해, 한 달 사이 다른 해석을 내놓으면서 현 집주인은 매도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새 집주인(매수인)은 자기 집에 들어갈 수 없게 된 상황이 대표적이다.
매수인이 ‘전세 낀 매물’을 사서 실거주하려면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발생 전(전세계약 종료 6개월 전)에 소유권 이전등기를 완료하거나, 세입자에게 계약만료일에 퇴거하겠다는 동의를 받아야 한다.
앞서 8월 초 “실거주 목적의 제3자에게 매도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정부의 말을 믿고 주택을 산 사람들은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산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이런 이유로 매매계약이 파기됐을 때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도 명확지 않은 상태다. 현 집주인도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세 낀 매물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매도 계획이 틀어지고 있다.
실수요자 대다수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6개월 내 입주하거나, 이전 집을 팔고 새집을 사야 하는 상황이어서 세입자의 전세계약 만료 6개월 전 소유권 이전등기를 하기도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y2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