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내린 한 도로에서 배달 이륜차 운전자가 미끄러운 길에 주행을 멈추고 오토바이를 끌고 가고 있다. [사진=연합] |
[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라이더는 이용 금지’
영하 20도의 강추위가 덮친 가운데 배달 라이더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야외에서 보낸다. 휴식 공간도 없다. 한파와 사투를 벌이는 배달 라이더들만 약 4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 확산 이전 카페나 편의점 등에서 식사 겸 휴식을 취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이마저 마땅치 않다. 아파트 지하주차장과 복도, 계단으로까지 떠밀리는 실정이다. 심지어 일부 식당들은 화장실 조차 배달 라이더의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배달플랫폼 업체들은 휴식 공간의 효용이 적다며 공공 기관에만 의존하고 있다.
6일 관련 업계와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내 라이더들의 휴식을 위해 마련된 공간은 서울시 노동권익센터가 운영하는 쉼터 다섯 곳과 구청 단위에서 운영하는 두 곳을 합쳐 일곱 곳이 전부다. 그나마 노동권익센터가 운영하는 다섯 곳 중 한 곳은 공사로 운영이 중단됐고, 구청이 개설한 쉼터 두 곳 역시 코로나19로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된 이후 휴관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상황이 이렇자 배달업 종사자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노하우를 공유해달라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한 이용자가 “5인 이상 모임 금지라 일하는 도중 어디 들어가서 쉴 곳도 없네요. 쉴만한 곳 없을까요”라고 글을 올리자, 댓글에는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주변 아파트 지하주차장, 사람이 비교적 적은 10층 안팎 오피스텔의 복도, PC방, 만화방 등을 추천했다.
패스트푸드 점에서 커피와 음식을 함께 시켜 착석한 뒤, 음식은 따로 챙겨뒀다가 식사 때가 돼서 한다는 댓글도 있다. 한 배달 라이더는 식당 화장실을 이용해 휴식을 취하려다 ‘라이더는 이용 금지’라며 거부당하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민간 배달사업자들도 오프라인 공간을 확보해 두고 있긴 하다. 다만 이는 위탁계약을 맺은 동네 배달대행 업주들이 지역 라이더나 장비를 관리하는 업무적 장소다. 휴식 공간을 함께 마련한 경우는 소수다. 이마저도 대행사에 소속된 라이더들만 이용할 수 있을 뿐, 배민커넥트나 쿠팡이츠 배달파트너처럼 프리랜서로 근무하는 이들과는 무관하다.
프리랜서는 다양한 배달업 고용 형태 중 그 수가 가장 많다. 매일 출근하는 배민커넥터만 1만명이 넘는다. 이중 상당수는 퇴근 이후 짧은 시간만 일하는 ‘투잡러’로 휴식이 절실하지 않을 수 있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고 전업으로 배달에 뛰어든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배달의민족이나 쿠팡이츠는 프리랜서를 위한 쉼터를 조성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월급을 받는 직고용 라이더나 위탁계약을 맺은 배달대행 자영업자 소속 라이더와 달리, 프리랜서들은 근무량이 수입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오히려 휴식을 최소화하고 싶어한다”며 “특히 대부분 자택 근처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휴식이 절실할 경우 각자의 집을 이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배달의민족 관계자는 “배민커넥터 분들이 휴식 공간이 정말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노조를 통해 요구를 해왔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쿠팡 관계자는 “근무자들이 어느 한 곳에 모여있는 게 아니라, 각자 원하는 곳에서 업무를 본다”고 설명했다. 일부 지역에 쉼터 몇 곳을 마련한다고 해서 큰 효용이 있진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서울 내에서도 지역별로 주문량이나 근무 환경이 달라 거주 지역과 무관한 곳에서 근무하는 라이더들이 부지기수다. 업무 권역별로 주문이 몰리는 지역이 있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만 쉼터를 마련해도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다.
서울시 이동노동자 쉼터 운영을 담당하는 최준호 서울시 노동권익팀장은 “코로나19로 라이더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아지고 ATM 같은 곳을 전전하게 되면서, 시가 운영하는 센터만큼은 휴관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 많이 있다”며 “올해는 서울 내 간이쉼터 10곳을 추가 개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hum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