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너무 많이 와서 예정 배송시간보다 늦을 것 같아요. 문 앞에 두고 갈게요. 확인해보세요.”
최근 폭설이 내리던 저녁 택배업체서 문자가 왔다. 번번이 똑같은 양식의 배송 안내문자가 오지만 이날은 배송기사가 별도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의 친절한 설명에 “괜찮아요. 천천히 조심히 오세요”라고 회신했더니 “감사합니다”라는 답이 왔다. 1시간 뒤 “택배 문 앞에 있습니다”라는 문자가 와 문을 열어보니 주문했던 상품이 놓여 있었다.
온라인으로 구매하고 택배로 전달받는, 평소와는 분명 다른 경험이었다. 문자를 주고받은 택배기사를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전에 없던 짧은 교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온기가 느껴졌다.
비대면이 일상 곳곳에 스며든 세상이다. 직접 받던 택배도 대면하지 않고 받는 것이 미덕이 됐다. 음식점주도 가장 흔한 비대면 관계 중 하나다. 직접 식당에 가지 않고 집에서 주문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배달앱을 통해 동네 곳곳의 음식점주와 만나고 있다. 소통 방식은 주문 시 요청 사항과 리뷰다. 특히 리뷰는 소비자의 만족도를 전달하고 해당 음식점의 평판을 좌우해 배달앱에 중요한 기능이다. 솔직하고 훈훈한 리뷰와 여기에 감사 표시를 하는 음식점주 답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반대로 음식, 배달에 대한 불만족을 과하게 드러내는 리뷰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하수구나 쓰레기통에 음식을 버린 사진을 리뷰로 올린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과도한 요청을 하고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며, 자신이 주문을 잘못하고도 되레 악의적인 리뷰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이 모두 비대면이라는 ‘벽’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일들이다. 아무리 맛이 없어도 식당에서 음식점주가 보는 앞에 음식을 하수구나 쓰레기통에 버리는 손님은 흔치 않다. 치킨집에 7명이 가서 1인분만 시키고 많이 달라고 떼쓰는 것도 상식 밖의 행동일 것이다. 물론 음식점주도 배달주문이라고 음식의 질이나 위생에 신경을 덜 쓴다면 ‘비대면 손님’은 점점 떠날 수밖에 없다.
직접 얼굴을 맞대지 않는 환경일수록 예의와 신뢰의 선을 넘기 쉽다. 이미 온라인에서 펼쳐지는 SNS 악플 공격은 사회 문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오죽하면 주요 포털사이트는 연예인과 운동선수 관련 기사에 댓글 기능을 없앴다. 한 유튜버는 방송에서 특정 음식점을 향해 근거 없는 비난을 해 멀쩡한 가게를 폐업에 이르게 했다. 비대면이 아니라면 일면식도 없는 대상을 향해 공격을 퍼붓기는 쉽지 않다.
반면 비대면을 통해서도 무한 감동이 전해지기도 한다. VR(가상현실)로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을 바로 눈앞에서 만나는 사연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한 남편은 VR기기를 착용하고 허공에 손짓하지만 그는 사별한 부인을 어루만지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추억 속의 대중가수도 VR를 통해 팬들 앞에서 옛 모습 그대로 노래와 춤을 선사한다.
비대면도 대면처럼 똑같이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다. 직접 대화를 하지 않고 악수나 포옹을 하지 않아도 온기와 냉기 모두 느낄 수 있다. 비대면에도 분명 체온은 존재한다. 점점 커지는 비대면사회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기본 상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