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육성연 기자] 번번이 밥으로 ‘삼시 세끼’를 먹던 한국인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샐러드나 담백한 빵, 영양스낵으로 식사를 대신하거나 아예 한 끼는 먹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다. ‘밥심’을 내세웠던 한국인에게 ‘밥’에 대한 정의가 다시 세워지고 있다. 견고했던 삼시 세끼 공식이 깨지고 있다. 뭐든지 빠르게 바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영향이다.
코로나19 확산 후에는 집에만 있게 되면서 하루에 필요한 칼로리 또한 줄어들었다. 이제 때가 되면 울리는 ‘배꼽시계’가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하루 세 끼를 먹어야 하는 이유가 사라지면서 두 끼만 먹는 이들이 늘어났다. 간헐적 단식의 유행도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키토제닉(탄수화물은 적게, 지방은 많이 먹는 식단)’ 열풍을 밀어내고 있다. 16~18시간을 굶는 간헐적 단식과 함께 12시간으로 식사시간을 제한하는 ‘12시간 식사 제한법’ 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미국 또한 최근 설문조사(국제식품정보위원회·IFIC)에서 ‘다이어트식단으로 키토제닉을 여전히 따라 한다’고 응답한 이들은 드물었으나 간헐적 단식의 인기는 높게 나타났다.
코로나는 직장인의 점심문화도 바꿔놓았다. 동료와 식당을 방문하는 대신 ‘나 홀로’ 사무실 책상에서 점심을 먹는 직장인이 늘어난 것이다. 시장조사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직장인 빈도는 50.2%로, 지난해보다 감소했다. 특히 젊은 직장인일수록 점심을 혼자 먹는 성향이 두드러졌다. 배달음식을 주문(2020년 14.4%→2021년 29.7%)하거나, 도시락을 가지고 다닌다(2020년 19.2%→2021년 22.6%)는 이도 증가했다.
샐러드 메뉴를 배달 주문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피그인더가든 제공] |
메뉴 역시 직장인의 인기 메뉴였던 ‘김치찌개’가 아니다. ‘샐러드 도시락’이 대세다. 사무실에 퍼지는 ‘음식 냄새가 적고 간편하게 먹기 좋으며 휴식시간을 보장받기 위해 빨리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늘어난 체중 감량에도 좋은 메뉴다. 이에 따라 샐러드의 ‘배달 주문’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추세다.
SPC그룹 샐러드전문점 ‘피그인더가든’의 지난 6월 배달 건수가 전년 대비 약 200% 증가했다. SPC그룹 관계자는 “서울에서도 여의도나 광화문 등 대표적인 주요 업무지구에 매장이 있으며, 최근 배달을 주문하는 고객들이 많아졌다”고 분석했다. 동원홈푸드가 운영하는 샐러드전문점 ‘크리스피 프레시’ 또한 용산이나 여의도 등의 오피스상권에 연이어 매장을 오픈했다. 샐러드의 배달 수요가 커지자 CJ푸드빌도 최근 배달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웨얼스마이샐러드’ 브랜드를 시범 운영하며 시장에 뛰어들었다.
재택근무나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삼시 세끼를 집에서 먹는 경우에는 때마다 밥을 차려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커졌다. ‘삼시 세끼 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더욱이 밥과 반찬에 국이나 찌개도 끓여 먹는 한식은 조리가 쉽지 않다. 삼시 세끼 전쟁에서 탈피하는 방법의 하나는 한 끼를 빵 등으로 간단히 해결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등장한 ‘빵식(食)’ 트렌드는 밥이 될 수 있는 담백한 ‘식사빵’ 수요를 늘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번진 ‘홈베이커리’의 유행, 그리고 편의점까지 가세해 식사빵을 판매대에 올려놓는 추세가 트렌드 확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리얼도 이러한 흐름에서 수요가 높아진 품목이다. 특히 코로나19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래놀라(통곡물을 꿀이나 시럽과 함께 뭉친 후 오븐에 구운 음식)’의 성장이 가파르다. 농심켈로그 관계자는 “지난해 ‘켈로그 그래놀라’ 제품군 매출은 전년 대비 21.7% 상승했다”며 “시장 성장에 따라 단백질 바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시장조사기업 이노바마켓 인사이트와 유로모니터 자료에 따르면 유럽과 미국에서도 아침식사나 저녁식사 대신 시리얼을 먹는 가정이 대폭 늘어났으며, 건강 추세에 따라 그래놀라나 ‘핫 시리얼(Hot cereal·오트밀 등을 우유에 섞어 죽처럼 끓여먹는 음식)’ 수요가 많아졌다.
시리얼과 함께 젊은 층에서는 그래놀라로 만든 바나 단백질셰이크, 건강한 스낵도 ‘가벼운 한 끼’로 주목받고 있다. 모두 단백질이나 비타민D 등 ‘핫’한 영양소가 강화된 스낵제품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는 식사 개념에서도 스트레스를 덜어버리는 방식으로 변화되고 있다. 먼저 ‘집밥’에 대한 정의를 더 유연하게 확장시키고, 식사시간에 ‘휴식’과 ‘놀이’를 더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제 집밥이란 꼭 ‘내가 직접 요리한 밥’ 이 아닌 ‘내가 차린 밥상’이라는 개념으로 넓어졌다. 배달음식이나 간편식도 집밥이며, 모든 식재료와 레시피를 알아서 준비해주는 ‘밀키트’ 역시 집밥이 된 것이다. 특히 밀키트는 ‘재미없고 복잡한’ 재료 구입과 손질 과정 없이 근사한 요리를 ‘쉽게’ 만든다는 ‘재미’를 주기도 한다. CJ제일제당 트렌드인사이트팀은 빅데이터 분석 결과, ‘의무적인 끼니’의 의미에 휴식과 놀이 개념이 더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밀키트 트렌드나 집에서 영상 콘텐츠를 시청하며 식사하는 ‘넷플릭스 스낵’, SNS 채널을 통한 ‘요리챌린지’ 등이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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