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커피 경쟁 치열한데 설상가상
990원짜리 커피는 원가도 안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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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한희라 기자]#“해외 원두값이 올랐다고 뉴스에서 보고 걱정하긴 했는데 올 것이 왔네요. 우유값도 올랐지, 기름값도 올랐지, 원두값까지 오르면 한 잔에 2000원에 못 팔아요. 주변 커피 가게가 올리나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동네 커피전문점을 10년 가량 운영해 온 A씨는 최근 원두 공급업체로부터 9월부터 ㎏당 원두 가격을 1000원 인상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코로나19로 매출이 떨어진 마당에 커피값을 올려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이 크다. 지난해 말부터 아르바이트생마저 관두게 하고 혼자 운영하고 있는데, 커피값만 빼고 다 오른다는 생각에 한숨만 나온다.
국제 원두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국내 원두값도 덩달아 인상되고 있다. 국내 원두값 인상은 가뜩이나 저가 경쟁이 치열한 동네 커피 전문점에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더 이상 한 잔에 990원하는 커피는 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원두 공급업체들은 이달 부터 ㎏당 원두값을 1000원에서 3000원 가량 인상에 나섰다. 원두값은 ㎏당 싸게는 1만3000~1만5000원, 비싼 곳은 2만5000원 정도 했으니 갑자기 10~20% 인상된 꼴이다.
그동안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며 동네 저가 커피경쟁은 치열한 상황이다. 한 잔에 990원짜리 커피까지 등장했다. 동네 커피전문점 업체들에 따르면 커피 한 잔에 원두값 350원, 포장비 380원 가량인데 여기에 전기세, 물세, 인건비, 부가세 등을 따지면 990원짜리 커피가 나오기 힘들다고 한다. 990원짜리 커피는 미끼상품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원두값 인상을 계기로 저가 커피 시대가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저가 커피 경쟁은 과거 한 줄에 1000원짜리 김밥이 여기저기 생겨났던 김밥전문점을 떠올리게 한다. 이같은 경쟁을 겪은 후 1000원짜리 김밥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원두값 인상에도 스타벅스, SPC 등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은 당분간 원두 공급가격을 인상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대형 프랜차이즈는 장기 위험회피 계약 등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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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커피값이 앞으로도 더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확보해 뒀던 원두 재고가 사라지면 커피값은 연말께 정점을 찍을 수도 있다. 게다가 원두산지의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향후 2~3년은 고공행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런던 커피선물 11월물 가격은 1일 2064달러로 8월 23일의 1884달러보다 약 10% 올랐다. 지난 1년간 시세를 보면 33.11% 인상됐다. 뉴욕 아라비카 커피는 1일 기준 2081달러로 지난해 10월 1일(1541달러) 대비 35% 인상됐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국제 커피 선물가격은 2014년 11월 이후 최고치다.
원두가격 인상은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 가뭄과 한파 등 이상 기후 때문이다. 브라질의 경우 커피 생산량이 최근 20% 넘게 줄었다. 커피 나무는 다시 심어 생두를 수확하기까지 보통 3년이 걸린다고 한다.
여기에다 커피 2위 생산국인 베트남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생산지와 항구 등에 봉쇄 조치를 내린 것도 커피 공급 가격을 올리는 요인이되고 있다. 베트남산 주요 커피 품목인 로부스타 커피 선물 가격은 최근 t당 2024달러로 4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커피 체인점들의 도미노 인상이 시작됐다. 미국 미시간주의 커피숍 체인인 ‘커피 비너리’는 원두 가격과 인건비가 오르자 최근 메뉴에 적힌 커피 가격을 평균 7% 올린 데 이어 추가로 10% 인상을 검토 중이다. 인스턴트 커피를 만드는 네슬레도 하반기에는 커피값을 인상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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