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편의점 상품 배달도
기후위기로 채솟값 폭등…애그테크, 대안으로
푸드테크 전문가 “정부, 산업 규모 파악부터”
지난 29일 서울 강남구의 로봇 한식당 ‘봇밥’에서 로봇팔 바비가 국을 끓이고 있다. [신주희 기자] |
[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 한창 바쁜 점심 시간대 서울 강남의 한 한식집 주방에서는 로봇팔 ‘바비’가 쉼없이 스테인리스 뚝배기를 인덕션에 올리고 있다. 바비가 일하는 동안 주방에서 직원들은 제육볶음을 볶고 있다. 정확히 3분 30초가 지나 국이 끓으면 바비가 피더기(feeder)에 냄비를 내려놓는다. 주방 직원도 조리를 마치면 따뜻한 찌개와 밥이 완성된다.
#. 참치에서 채취한 참치 세포를 소금, 설탕, 단백질과 영양 성분을 생물반응기에 넣고 복제한다. 길러진 세포가 3D모양의 한 덩어리로 결헙할 수 있도록 구조를 짜면 붉은색의 참치 등살 적신이 완성된다. 미국의 세포 배양 해산물 제조사 핀리스푸드가 만든 ‘배양 참치’다. 비슷한 방식으로 미국의 푸드테크 기업인 와일드 타입은 북태평양에 분포하는 은연어를 배양해 냈다. 지난 7월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한 레스토랑 시식회에서 선보인 배양 연어는 연어의 흰 지방과 살결 그리고 주황색 무늬까지 그대로다.
코로나 팬데믹이 식생활, 유통·소비 방식 전반에 변화를 가져 왔다. 모든 소비가 방구석에서 이뤄지는 ‘뉴노멀 경제’가 새로운 트렌드가 떠오르면서 유통 채널의 ICT 접목 사례들이 늘었다. 또 지속가능한 가치가 주목 받자 ‘대체육’, ‘배양육’ 기술도 발전하는 등 푸드테크는 각 분야에서 진화 중이다.
미국의 세포 배양 해산물 제조사 핀리스푸드가 만든 배양 참치. [핀리스푸드 홈페이지 캡처] |
푸드테크는 식품(food)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단어로, 식품의 생산과 제조·유통·소비 전반에 걸쳐 첨단 기술을 접목한 것을 말한다. 환경파괴로 식량 자원은 감소하는 반면, 인구는 늘어나는 가운데 한정된 자원으로부터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첨단기술이 농업 및 식품산업에 접목되면서 탄생했다.
이 때문에 푸드테크의 범위, 적용되는 기술도 무궁무진하다. 현재까지 주목 받고 있는 푸드테크 분야로는 ▷농산물 생산에 신기술을 적용하는 애그테크(농업과 기술을 접목한 신산업) ▷대체 단백질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한 음식 제조 ▷요리를 보조하고 음식을 서빙하는 협동로봇 ▷스마트키친 ▷음식·식재료 등의 배달 서비스(배달 앱), 맛집추천 및 예약 서비스인 O2O 서비스 등이다. 이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융복합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전 세계 푸드테크 시장 규모도 해마다 커지고 있다. 올해 세계 푸드테크 시장규모는 2720억 달러로, 연평균 7% 성장률을 보이며 급성장 중이다. 2025년에는 3600억 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스타트업 시장 조사업체 딜룸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유럽의 푸드 테크 산업은 24억 유로(약 3조2957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했으며 2013년도와 비교하면 12배 이상 뛰었다. 또 푸드 테크 스타트업의 평가 가치는 2019년도 대비 156% 증가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비대면, 배달 문화가 보편화 되면서 퀵커머스와 온·오프라인 연계(O2O) 플랫폼 시장이 꽃 피웠다. 이에 로봇 기술까지 더해져 로봇이 직접 배달하거나 로봇이 직접 음식을 만드는 푸드테크로까지 나아갔다.
GS25는 인공지능(AI) 로봇이 직접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로봇 배달 서비스는 카카오톡 주문하기를 통해 고객이 GS25 상품을 주문하면 고객 정보가 GS25 점포로 전달된다. 점포 근무자가 로봇에 상품을 싣고 고객 정보와 목적지를 입력하면 몸체에 탑재된 3칸의 서랍에 한 번에 최대 15㎏ 중량의 상품을 3곳까지 배달이 가능하다. 이 로봇은 스스로 도착지 위치 및 주변 환경을 학습하고 목적지까지 최단 거리로 자율 주행을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븐일레븐도 지난달 26일 자율주행 로봇 소프트웨어 개발 스타트업 ‘뉴빌리티’와 ‘자율주행 로봇 배달 서비스 도입 및 상용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뉴빌리티의 배달로봇 ‘뉴비’는 카메라 기반 자율주행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다. 고층 건물과 붐비는 도로에서 GPS 기반 자율주행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단점을 보완했다. 또 라이다(LiDAR) 기반의 자율주행 솔루션에 비해 뉴빌리티의 멀티 카메라 시스템은 개발 비용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해 가격도 대폭 낮아졌다.
기후 변화로 인해 안정적인 농작물 생산이 어려워지자 밥상 위 식재료도 위기를 맞이했다. 이례적인 가을 장마 등으로 상추, 깻잎 등 채솟값이 폭등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애그테크는 빅데이터와 ICT 기술을 농업과 결합해 기후의 영향 없이 안정적인 농작물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국내에서도 스마트팜을 구축한 애그테크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스마트팜 스타트업인 에이트팜은 지난해 서울교통공사와 함께 지하철 7호선 상도역, 3호선 남부터미널역 등에 ‘메트로팜’을 선보였다. 세계최초 지하철 안에 있는 스마트팜은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의 첨단 기술로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 일정한 수확량을 달성하게 한다. 또 발광다이오드(LED)가 태양광 역할을 해 실내에서도 작물을 키울 수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눈여겨본 스타트업 엔씽은 컨테이너를 활용한 ‘모듈형 수직 농장’에 특화했다. 이마트는 지난해 6월 프로젝트펀드를 통해 엔씽 지분투자에 나서기도 했다. 엔씽은 컨테이너를 활용한 모듈형 수직농장 시스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수경재배 방식으로 물 사용량을 98% 절약하면서 단위 면적당 생산량은 100배나 늘릴 수 있다.
또 지난 7월에는 국내 최초로 스마트팜 쇼룸 ‘식물성 도산’을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인근에 열었다. 자체 개발 솔루션인 큐브 OS를 통한 재배 환경을 제어하고 방문객들은 국내 유통 중인 버터헤드, 로메인, 바타비아 3종이 자라나는 전 과정을 볼 수 있다. 평일 12~17시, 주말 13~18시까지는 자동화 로봇이 투입되어 직접 작물 관리를 담당한다.
전문가들은 푸드테크 분야의 발전을 위해선 우선 정부 부처가 관련 산업 규모를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까지는 식품의 생산, 제조, 유통이 각각 구분돼 있어 그 범주와 담당 정부 부처도 달랐다. 그러나 산업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다보니 기존 기준과 규제의 현실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잉크젯 방식의 식품 3D 프린터기의 경우 카트리지에 사용되는 식품 소재 관련 유효 기간을 정해야하는 등 식품 3D 프린터의 위생 가이드라인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푸드테크가 일찍이 발달한 미국은 인공 달걀로 만든 ‘저스트 마요’에 미국 식품의약처(FDA)가 달걀이 들어가있지 않다는 이유로 ‘마요’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고 지적하는 선례도 있었다.
이봉주 한국 푸드테크협회사무국장은 “농림축산식품부 등 정부 부처에서 푸드테크 시장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며 “푸드테크 내에서도 융복합 현상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만큼 어떤 사업자가 해당 범주에 해당하는지를 구분, 이에 따른 규제를 완화해 관련 법을 새로 마련해야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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