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한희라 기자] # 40대 주부 A씨는 지난 주말 대형 마트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몇 달 전만 해도 4만원대였던 LA갈비가 7만원대로 올라 있었다. 갈비를 사고 나면 10만원대로 잡은 장보기예산을 훌쩍 넘길 것 같아 갈비구이는 포기했다. A씨는 장을 볼 때 전단지 세일품목에 올라온 것 위주로 사고 있지만 가격이 너무 올라 할인을 해도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했다.
장바구니물가가 무섭게 오르고 있다. “월급 빼고 안 오른 게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심지어 주부들은 “하룻밤 자고 나면 값이 올라 있더라”라고 한숨 쉰다. 200%, 300% 폭등이 예사라는 것이다.
서울 한 대형 마트에서 시민이 과일을 고르고 있다. [연합] |
2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파, 양파, 시금치, 양배추, 상추, 깻잎, 애호박, 오이 등 주요 채소의 올해 연평균 가격은 최근 5년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농수산물과 고기류의 급격한 상승은 외식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영업자들도 코로나 폭풍을 겨우 넘기니 이젠 물가가 발목을 잡는다며 한숨을 쉬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11월 시작과 함께 피자를 비롯해 라면, 우유 등 각종 먹거리 제품가격이 또 한 번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앞으로도 장바구니물가의 고공 행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우데이’를 앞둔 지난 10월 31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 마트에서 시민이 한우를 들고 세일 안내문을 보고 있다. [연합] |
40대 B씨 부부는 장을 보러 갔다가 부부싸움까지 했다. “소고기 먹어본 지 오래됐다”는 아이들 성화에 ‘반값 한우’ 행사를 노렸지만 주차장 들어가는 것부터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계산하는 데 또 1시간 넘게 걸린 데다 막상 판매대에 사려 했던 부위가 동이 나 다른 부위를 사야 했다. 워낙 비싼 물가에 B씨 부부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고깃값은 올 들어 계속 오르고 있다. 2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소매가격 정보에 따르면 1일 한우안심의 100g당 평균 가격은 1만8764원으로, 1년 전의 1만4902원보다 26%가량 올랐다. 추석이었던 한 달 전과 비교하면 6.8% 올라, ‘대목’이라는 추석물가보다 오히려 더 뛰었다. 그나마 저렴해서 식탁에 자주 올랐던 호주산 갈비도 100g에 3143원으로, 전년 대비 40% 올랐다.
재룟값이 오르면서 외식물가도 고공 행진이다. 메뉴별 1000원 오른 것은 애교 수준이다. 50대 직장인 C씨는 퇴근 후 자주 들르는 식당에 갔다가 눈을 의심했다. 100g에 1만5000원 하던 갈빗살이 어느새 1만8000원으로 올라 있어서다. 상추와 깻잎이 함께 나오던 채소 구성도 깻잎 하나로 줄었다. “상추 한 상자에 5만원이 넘어서”라는 식당 주인 말에 뭐라고 항의도 못했다.
지난 10월 31일 서울의 한 대형 마트에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 |
문제는 물가상승세가 쉽사리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당장 11월 시작과 동시에 값을 인상한 품목이 적지 않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중저가 피자 프랜차이즈 피자스쿨(씨에이치컴퍼니) 주요 매장들은 지난 1일부터 약 28종 피자 가격을 1000원씩 인상했다. 오이피클 판매가도 기존 400원에서 500원으로, 25% 인상됐다. 피자스쿨의 전체 메뉴 가격인상은 약 3년 만이다.
팔도는 지난달 예고한 대로 이날 일부 음료 가격을 평균 8.2% 인상했으며, 롯데푸드도 파스퇴르 우유 가격을 올렸다. 흰 우유는 평균 4.9%(소비자가 기준), 발효유는 평균 6.6% 올랐다.
팔도 관계자는 “원당, 포장재 등 부원료 및 인건비, 물류비와 같은 제반비용이 상승하며 제조원가 압박이 크다”며 “소비자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 제품에 한해 가격인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식품 가격상승은 병충해, 한파 등 이상 기후와 함께 재배면적 감소, 임금상승 등 공급적 원인이 크다.
통계청이 지난 10월 28일 발표한 ‘2021년 가을배추·무 재배면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가을배추 재배면적은 1만3345㏊로, 지난해 1만3854㏊보다 3.7%(509㏊) 감소했다. 이례적인 가을장마 탓에 전국적으로 ‘배추 무름병’이 확산됐고 여기에 갑작스러운 한파까지 겹치면서 피해 농가가 크게 늘면서다. 가을배추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11∼12월 도매가가 평년보다 오른 포기당 2300∼2500원 수준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로 외국인 노동자의 입국이 급격하게 줄면서 농산물 적기 수확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부가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내산 농산물값은 글로벌 에너지 가격의 영향도 받는다. 비료의 원재료 중 암모니아질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천연가스비용의 비중이 75~90% 달해,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며 비료 가격이 상승하고 다시 농산품 가격 연쇄 상승으로 이어진다.
소비 증가도 가격상승을 이끌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식품 소비가 늘고, 재난지원금 등이 풀리며 다른 소비 대신 식품 소비가 급증하면서다. 업계에 따르면 한우는 도축량이 전년 대비 증가했는데도 소비 증가로 가격이 상승했다.
이에 정부가 물가에 적극 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유가나 환율 등 대외적인 요인이야 정부로서 어쩔 수 없지만 식료품 등 내부 요인은 충분한 통제가 가능하다”면서 “정부가 수급 상황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물가관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필요하다면 수입을 늘리는 것도 방안”이라고 말했다.
주원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최근 식품 가격인상은 이상 기후가 가장 큰 원인이긴 하다”면서도 “수입물량을 늘릴 수 있는 시스템도 고민해봐야 한다. 농산물 가격안정화를 위해 현재로서는 그것이 유일한 방안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는 수입산을 늘리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반박했다. 정부 관계자는 “평소에는 관세도 있고 해서 일부 과일이나 채소 품목 외에는 수입에 실익이 없다”며 “단가라든지, 통과비용 등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검토해야 할 게 많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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