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이제 드디어 걸렸어요.” “이제야 걸린 거야? 두 번째는 아니고?” 요즘 지인들을 만나면 농담처럼 하는 이 같은 안부인사는 코로나 3년차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
새 정부가 출범하고 거창하게 “감염병 대응도 정치방역에서 전문가 의견과 데이터에 근거한 표적방역·과학방역으로 전환하라”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과학방역’ 화두가 던져졌지만 새 정부 출범 100일이 넘는 동안 국민은 도대체 ‘과학방역’이 뭔지 알지 못하고 있다. 이제 코로나19는 ‘감기’ 정도라는 말인 건지, 아니면 세간의 자조 섞인 말처럼 “이제 거리두기도, 치료도 각자도생하면 그것이 과학적”이라는 건지 헷갈린다.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8월의 마지막 날인 30일 코로나19 발생 현황을 보면 11만5638명이 늘어 총 누적 확진자 수는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가 돼가고 있다. 지난주 한국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세계 216개국 중 인구 대비 1위였다.
숫자보다는 내용이 더 심각하다. 인공호흡기나 인공심폐장치, 고유량 산소요법 등이 필요한 위중증 환자는 계속 증가하고 사망자도 100여명대를 넘나들고 있다. ‘과학방역’의 새 사령탑을 맡은 정기석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회 위원장은 사망자 수와 치명률, 중증화율이 증가하는 추세를 “독감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독감보다 치명률이 낮아지면 정말 고마운 것이고, 좀 높더라도 조금 더 센 계절독감 혹은 1년 내내 오는 감염병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어쩔 수 없는 추세를 받아들이는 것이 ‘과학병역’의 실체인가? 거리두기는 또 어떤가. 정부는 지난 7월 13일 국민 참여에 기반을 둔 ‘자발적 거리두기’를 시행하면서 치명률 증가 등 유행 상황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을 때 선별적·부분적 거리두기를 시행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치명률 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은 이후 “국가 주도 방역은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고 말해 ‘과학방역’이 결국 ‘각자도생’이냐는 논란을 자초했다. 이후 백 청장은 “정부가 시간·인원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보다는 국민이 2년 반 동안 쌓아온 경험에서 취득한 지혜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해 ‘과학방역’은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임을 자인하는 셈이 됐다.
과연 ‘과학방역’을 내세운 현 정부의 코로나19 재유행 대책은 그러면 얼만큼의 점수를 받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국민으로부터 낙제도 사치스러운 점수를 받았다. 30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이 한 여론조사업체와 함께 지난 17~21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코로나19 재유행 위험 및 위험 대응에 관한 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현재의 유행 대응이 효과적이라는 응답은 15.5%에 불과했다. ‘정부 정책이 과학적 기반에 근거하고 있다’는 응답은 26.7%에 그쳤다. 현 방역정책의 신뢰도 역시 ‘(방역)정책이 신뢰할 만하다’고 답한 사람은 26.4%에 불과했다.
코로나19 유행 대응과 관련해 자신이 신뢰하는 주체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내가 아는 내 주변 사람들을 신뢰한다’(67.4%)는 응답이 ‘보건 당국을 신뢰한다’(57.8%)는 응답을 앞질렀다. 윤석열 정부의 과학방역을 ‘각자도생’으로 비하했던 세간의 평가가 구체적인 여론조사로 드러난 것이다. 신뢰를 잃은 당국이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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