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음식 꼭 찍어 값 내려달라 부쩍 많아”
대형마트 3사, ‘로스 리더’ 먹거리 출시 적기 판단
‘대기업 대 영세상인’ 구도 사라지고
‘공급자 대 소비자’ 국면 전개
이마트는 매장에서 직접 만든 소시지 피자를 1일 1판 한정으로 5980원에 판매한다. 프랜차이즈업체 피자의 4분의 1 수준 가격이다. [연합]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반값 족발도 만들어 주세요.” “반값 햄버거도 해주실 거죠?”
4일 대형마트 관계자는 최근 고객 민원 여부를 보고 받다가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는 “소비자들이 메뉴 개발에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처음”이라며 “특정 음식을 꼭 찍어 값을 내려달라는 소비자가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에서 시작된 ‘반값 메뉴’ 경쟁에 소비자들이 ‘오픈런’까지 불사하며 열광하면서 반값 족발, 반값 보쌈, 반값 햄버거, 반값 양장피 등 신규 메뉴 출시 요구가 늘고 있다. 실제로 지역 맘카페와 각종 커뮤니티에는 대형마트가 내놓는 반값 메뉴 할인 기간을 공유하는 게시물부터 판매 시간대, 맛 비교 후기, 상시 판매, 메뉴 추가 확대 요구 등 글들이 8월 한 달에만 수백 건씩 쉽게 검색된다.
그만큼 대형마트도 바빠졌다. 대형마트 3사 모두 고객의 의견을 꾸준히 수렴해 합리적인 상품을 출시한다는 입장이다. 마진이 적어도 고객을 끌어모을 ‘로스 리더(loss leader)’ 상품을 선보이고, 자사 포인트 적립 등과 연계해 단골 고객을 강화하기에 적기이기 때문이다.
롯데마트가 선보인 ‘반값 피자’. 엘포인트 회원 대상으로 정상가에서 5000원 할인된 금액에 판매한다 [연합] |
1일부터 판매를 시작하는 롯데마트의 ‘한통가득 탕수육’. [롯데쇼핑] |
엘포인트 회원 대상으로 할인을 전개하는 롯데마트는 지난 1일부터 ‘가성비 중식’ 행사를 시작으로 반값 탕수육을 판매, 고객의 이번 반응을 면밀하게 살핀 뒤 추가 메뉴를 꾸준히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푸드이노베이션센터(FIC)의 셰프와 상품기획자(MD) 중심으로 반값 메뉴 개발이 수시로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마트도 이날부터 일주일간 반값 메뉴 외에도 신세계포인트 적립 시 매콤한 특제 BBQ소스를 바르고 구운 ‘매콤 BBQ 윙·봉’을 정상가 보다 20% 할인된 금액으로 판매한다. 오징어 한 마리를 통으로 튀긴 ‘불꽃 오징어 튀김’도 20%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이는 2010년 12월 롯데마트가 출시한 통큰치킨이 ‘7일 천하’로 사라진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국면이다. 당시만 해도 대기업이 영세상인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것은 공정과 상생에 어긋난다는 정치적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롯데로 하여금 백기를 들게 했다.
대형마트 반값 메뉴 시작을 알린 홈플러스의 ‘당당치킨’. [헤럴드경제DB] |
반면 6%대 고물가가 사실상 석 달째 이어지고 있는 지금의 전선은 ‘대기업 대 영세상인’ 구도를 완전히 뛰어넘었다. 오히려 국면은 ‘프랜차이즈 대 소비자’에서 ‘공급자 대 소비자’로 바뀌어 전개되고 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업체, 영세상인 등이 얽힌 논쟁에서 무시돼 왔던 소비자가 나타난 것이다.
규모의 경제를 갖춘 대형마트는 원가 절감에는 탁월한 경쟁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대규모 초도 물량 매입이 가능해 원가를 크게 낮출 수 있고, 임차료·임대료 등 부가비용이 추가로 들지 않기 때문이다. 반값 메뉴를 사기 위해서는 마트에 직접 방문해 줄을 서서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배달비도 따로 들지 않는다.
대기업이 영세상인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주장이 힘을 잃은 데는 치킨이나 피자, 햄버거 등에 대해 소비자들이 느끼는 가격 체감도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의미다. 특히 반값 치킨은 소비자 후생이라는 이슈로 부활하면서, 대기업이라고 해서 역차별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경제논리에 힘을 더하고 있다. 대형마트업계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물거품 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다시 거론되길 기대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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