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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四色]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

이태원 참사 발생 후 이틀이 지난 10월 31일 월요일 퇴근길 저녁. 일주일에 한두 번 가는 수영과 조깅을 하려고 길을 나섰지만 왠지 모르게 가는 내내 마음이 진정이 안 됐다. 우울함과 불안한 감정이 교차하면서 생각이 많아지고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가던 길이 낯설게 느껴져 결국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에 돌아와 계속 멍한 느낌과 무기력감이 지속됐다. 아내도, 지인들도 모두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이태원 참사는 나와 주변 사람들을 이미 ‘집단 트라우마’의 수렁에 빠트렸다.

트라우마는 위협적인 죽음, 심각한 부상 등 외상성 사건에 노출된 이후 그 기억과 정신적 고통이 장기화되는 현상으로, 심각하면 질병인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유발한다. 트라우마는 본인이 당하진 않았더라도 지나가다 접한 끔찍한 교통사고나 안타까운 재난 현장을 봤을 때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긴다. 뉴스나 SNS 등으로 본 156명 젊은 청춘의 압사 전후의 모습들은 국민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치유는 올바른 수습에서 출발한다. 참사 이후 의료계를 중심으로 무료 상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집단 트라우마 치유대책도 뒤따르고 있지만 이번에도 역시 국가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 9·11테러와 일본의 동일본대지진 참사는 십수년인 지난 지금도 관련법 제정을 통해 피해자 외에도 구조대, 자원봉사자 등은 물론 일반시민에게도 트라우마 치유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정부는 조속한 관련입법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줘야 한다.

이번 국가 시스템의 부제로 인한 대참사로 인한 트라우마는 그냥 시간만 지나면 잊히고 국가애도기간을 정하고 대통령이 매일같이 조문을 갔다고 씻겨지는 게 아니다. 일주일여가 지난 후 사과를 표했지만 참사 이후 운석열 대통령이 참사 현장에서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다고?”라며 물은, 희생자 유가족의 아픔을 어루만지지 못하는 공감력이 부족한 태도나 이태원 참사 외신기회견에서 국가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 대한 통역 과정에서 나온 한덕수 국무총리의 “이렇게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요?”라는 농담과 웃음,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 경찰서장, 구청장 등의 사과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와 직무유기에 더해 일부 정치인의 국민 정서와는 괴리되는 막말,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천공의 “아이들의 희생, 엄청난 기회가 온 것”이라는 망언이 국민에게 ‘2차 트라우마’를 주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불안해하고 우울해하는 트라우마의 본질은 그저 한때의 젊음을 잠시 즐기려고 나온 156명의 청춘이 행정 시스템의 부재 혹은 그 무엇으로 고통스럽게 숨졌듯이 나도, 내 가족도 언제 어디서 불시에 죽음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나온다. 이런 트라우마가 치유되기 시작하는 첫 번째 단추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정확한 진상규명과 참사를 불러온 질서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 내의 경제력을 가질 만큼 성장했다지만 아무리 외형이 성장해도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가 내실이 없다면 언제든지 이런 대형 참사가 앞으로 계속 일어날 수 있고 국력은 한순간에 추락할 수 있다는 냉엄한 교훈을 이번에 얻었다. 정치적인 쟁점으로 삼는 것도 경계는 해야겠지만 시시비비와 신상필벌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국민적 트라우마가 극복될 것이다.

kt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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