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양천구 목일중에서 진행된 기후변화 교육을 들은 한 학생의 필기 내용. 기후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기상 이변이 재앙 수준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이 모든 일은 인간 자신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적었다. |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태풍이 한꺼번에 7개나 있대요” “힌남노로 지난해에 다 떠내려갔어요” “하와이에서 큰 산불이 나서 홀라당 탔어요”
지난 11일 서울 양천구 목일중학교 과학실에서 진행된 기후변화 교육에 모인 1학년 학생들. 알고 있는 기후변화의 사례에 대해 저마다 한마디씩 재잘대던 학생들은 이어지는 강사의 이야기에 숙연해졌다.
“지구가 열이 나서 날씨가 정상이 아니에요. 고치지 않으면 계속 올라가겠죠. 이미 1도가 올라서 여유는 0.5도 남았어요. 1.5도를 넘어 지구 온도가 2도를 넘어가는 순간 다시는 노력해도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어요.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1.5도에서 멈춰야겠죠?”
11일 서울 양천구 목일중학교에서 진행된 기후변화 교육을 약 20명의 1학년 학생들이 듣고 있다. 주소현 기자 |
이날 교육은 양천구의 ‘학교로 찾아가는 기후변화 교육’의 일환이다. 전문 강사가 직접 학교에 출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최근 3년 간 179회 수업을 통해 약 3000명의 학생들이 기후변화 교육을 들었다. 이번 2학기에는 목일중을 비롯해 4개 초교의 차례다.
수업은 날씨와 기후변화, 기후변화 영향과 발생원인,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실천방법, 에너지 절약 및 생산 방안, 미세먼지 바로알기 등 탄소중립을 위한 이론 교육과 체험형 교육으로 90분 간 이뤄졌다.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기후변화 교육을 하고 있다 [양천구청 제공] |
놀라웠던 건 학생들의 태도였다. 집중력이 흩어지기 쉬운 금요일 오후 동아리 시간이었음에도 교탁을 향해 몸을 돌려 앉아 수업 내용에 귀 기울였다. 진지한 얼굴로 필기를 하는가 하면 손을 들고 적극적으로 대답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수업을 지켜보니 학생들에게 ‘지구가 아프다’는 식의 쉬운 비유는 필요 없었다. 기후변화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온실가스”라는 대답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원인 중 하나로 화석연료를,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는 에너지로는 전기를 지목했다.
어른들도 모를 법한 개념도 이미 알고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탄소중립’의 의미를 물으면 “탄소를 쓴(배출한) 만큼 흡수해서 총 발생량이 0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정확히 답해 박수 갈채를 받은 학생도 있었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를 1.5도 이상 올리지 않기로 국제적으로 합의한 ‘파리기후협정’이 언급될 때 학생들은 따라 되뇌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11일 서울 양천구 목일중에서 진행된 기후변화 교육을 들은 한 학생의 필기 내용.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450ppm, 지구 기온 1.5~2도를 ‘임계점’이라고 적었다. 주소현 기자 |
기후변화로 인한 현 상황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만큼 때로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왔다. 학생들은 “어른이 돼도 지금처럼 더우면 에어컨을 틀고 수도꼭지만 틀면 뜨거운 물을 쓰며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입을 모아 “아니요”라고 답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국가 순위를 소개할 때는 웅성대는 소리가 커졌다. 한국은 전세계 국가 중 온실가스 배출 총량으로 따졌을 때 7위, 국민 1인당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으로는 6위다. 강사가 “우리나라가 인구로는 29등이니 에너지도 29등이나 그 이하로 쓰면 좋겠죠?” 말하자 학생들은 “이야, 역시 우리나라”라며 자조 섞인 탄성을 내뱉었다.
학생들은 기후변화를 저지할 수 있는 방법에 주목했다. 특히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을 새 에너지에 큰 관심을 보였다. 새 운송 수단으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를 이야기하고, 집 발코니에 달린 태양광 패널을 자랑했다. 수업 시간에 라디오가 나오는 자가 발전 손전등을 소개하면 쉬는 시간에는 앞다퉈 나와 스스로 작동해봤다.
이날 교육을 들은 수업을 들은 이모 군도 “원래 기후변화에 관심이 조금 있었다”며 “구체적인 자료와 수치들을 알게 되니 기후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모 양은 “기후변화에 대해 이미 알고 있던 내용들도 있었지만, 신재생에너지 등은 새로웠다”며 “버려지는 것들을 재활용하는 것만으로도 환경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강의를 진행한 백수영 강사는 “지난해 환경교육법이 개정되면서 환경 교육에 학교나 학부모들의 수요가 큰 편”이라며 “현재 기후변화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되 미래 세대가 스스로 권리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수업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ddressh@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