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에 줄도산·공급절벽 가속 우려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정부가 1년여 만에 주택 공급대책을 내놓은 것은 공급 감소에 대한 우려가 부동산시장 불안을 부채질할 것이란 위기감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8월 16일 발표한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은 도시정비사업 규제 등을 풀어 5년간 270만호를 공급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하지만 지난해 개발업계를 강타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불안이 이어지며 주택 착공 실적이 크게 쪼그라들었다. 상황이 이렇자 최근 수년 뒤 ‘주택 공급대란’으로 이어져 공급 감소에 따른 집값 상승 우려가 최고조에 달해 있는 상태다.
2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민간의 주택 착공 대기물량은 33만1000호에 달한다. 지난 2020년(23만8000호)과 비교하면 약 10만호 많은 수준이다. 전년도 인허가를 받고 다음해 상반기까지 미착공된 물량 비중은 2021년 41.8%에서 올해 상반기 63.3%로 치솟았다. 7월 기준 전국 주택 월평균 인허가는 2만9611호로, 지난 3년간 월평균 수치 4만2353호의 70% 수준이다. 같은 시기 월평균 착공 건수도 1만4614호로, 지난 3년간 월평균 건수 4만1484호의 35% 수준이다.
대외 여건 악화에 위축된 민간사업자들은 사업시기를 조정하고 있다. 당장 금리·원자재 가격이 치솟아 주택 건설사업성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건설공사비지수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4% 상승했는데 2021년부터 2023년 사이에는 연평균 11% 올랐다. 이에 건설업계는 선별 수주·착공에 나서고, 분양가는 시장 침체에도 고공 행진 중이다. 분양시장 상황은 나아지고 있지만 지역별 온도차는 여전하다. 올해 6~8월 청약경쟁률은 수도권의 경우 17.5대 1, 지방은 9.3대 1이다.
특히 건설업계의 돈맥경화가 심상치 않다. 공사비와 PF 상환을 위한 신규 분양은 미뤄지거나 물량이 줄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21년 12월 3~4% 수준이던 PF 대출금리는 지난달 기준 8~9%까지 올랐고, 설상가상 신규 대출은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올해 6월 말 기준 133조1000억원까지 늘었고 연체율은 2%대를 돌파했다. PF시장 경색에 건설업계에선 줄도산 우려도 불거지고 있다.
이런 연유로 민간 공급 위축이 가속하는 가운데 공공부문 또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철근 누락 사태 등에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공급 위축 전망은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집값 상승 압력으로 이어졌다. 몇 년 뒤 새집은 줄어들고 분양가는 계속 오를 것이란 판단에 ‘지금 가격이 가장 싸다’는 집값바닥론이 상승세를 부추긴 것이다. 부동산정책 핵심 기조인 ‘주거 안정’과 멀어지는 양상을 보이자 정부는 현 주택 공급 상황을 ‘초기 비상 단계’로 규정했다.
서울의 한 재건축단지에서 크레인이 작동 중이다. [연합] |
이에 정부가 26일 공개한 ‘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은 대규모 물량 제시나 수요진작책은 없지만 기존 계획의 차질 없는 이행과 원활한 공급 뒷받침에 방점이 찍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공급 선행지표가 안 좋은 상황”이라며 “현재 인허가를 진행 중인 19만호, 작년에 인허가를 받고 착공 대기 중인 33만호 등 총 52만호 물량이 정상적인 공급 트랙에 올라서도록 하는 것이 대책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그래서 이번 대책에서 건설업계 부도위기를 막기 위해 정상 사업장에 한해 공적 보증기관의 보증 규모를 확대하고, PF 보증 심사 기준을 완화해 보증 대상 사업장을 확대하며 자금을 공급하는 데에 집중했다. 부실·부실 우려 사업장은 사업성 제고와 신규 자금 유입을 지원키로 했다. 비(非)아파트의 건설자금을 기금에서 1년간 한시 지원(대출 한도 호당 7500만원, 금리 최저 3.5%)해 오피스텔 등의 공급활성화를 꾀했다. 비금융 지원책에서는 공공택지 전매 제한 완화, 공공택지 계약 후 조기 인허가를 받으면 신규 공공택지 공급 시 인센티브 부여, 기존 분양사업의 신속한 임대사업 전환 등으로 민간부문의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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