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주 이해관계, 보상 등 관건
노후한 세운상가 건물/박자연 기자 |
[헤럴드경제=박자연 기자]최근 세운상가 외벽이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하며 세운상가 재개발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 세운상가는 건물 곳곳에 철근이 드러나 있고, 추가적인 붕괴 우려도 없는 상황은 아니지만 민간과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서울시는 명확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당장 먹고 살기가 급급해 ‘위험 지역’으로 출근해야 하는 상인들은 지자체의 추진력 있는 결단을 촉구했다.
노후한 세운상가 건물. 철근이 육안으로 보기에도 드러나 있다/박자연 기자 |
27일 방문한 종로구 세운상가는 콘크리트 외벽이 떨어진 곳만 접근금지 띠가 둘러 있을 뿐 다른 가게들은 아무일이 없다는듯 문이 열려 있었다. 이달 19일 83kg 외벽이 떨어져 상인이 중상을 입은 곳이라고는 짐작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보이는 평온함과 달리 상인들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사고 현장 인근에서 영업 중인 상인은 걱정스레 사고가 일어났던 현장을 몇 번이고 살폈다. 그는 "트라우마가 있다"면서 "사고 원인을 조사해야 해서 별다른 조치를 못한다는데 여전히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외벽이 떨어졌지만 그물망 등 아무런 조치가 없이 방치된 모습/박자연 기자 |
사건이 발생한 해당 층을 매일 오가는 세운상가 세입자들도 두려움 어린 시선을 내비쳤다. 세운상가에 작업실이 있는 한 청년은 "매일 출근하면서 지나가는 길인데 (사건) 이후로 매일 불안하다"며 "건물보다 조금 떨어져 걷고 나름 신경쓰긴 하는데 확실한 예방책은 아니지 않느냐, 빠른 대책이나 건물 노후 조사가 이뤄지면 좋겠다"고 했다. 또다른 세입자도 "사건 이후 따로 안내를 해주지 않는 게 너무한 것 같다. 언론에 나오지 않았으면 이런 사고가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라며 "정말 위험했던 사건인데 후속 대처가 너무 안일한 것 같다"고 말했다.
83kg 콘크리트가 떨어진 세운상가 현장/박자연 기자 |
상인들은 또 다시 이런 사건이 반복될 수 있으니 하루 빨리 철거 등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들은 명확한 보상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운상가에 30년 가까이 터를 잡고 장사를 했다는 한 상인은 "우리는 자영업자인데 사고가 일어났다고 해서 당장 문을 닫을 수 없는 노릇"이라며 "철거가 필요한 상황임은 분명한데 보상을 잘 해줘야하지 않겠냐. 그냥 장사 접고 나가라고 하면 나중에는 새 건물 월세가 비싸 다시 못 들어온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근처가 다 주상복합인데 여기를 철거하고 또 주상복합을 세운다면 특색없는 건물만 또 하나 느는 것"이라며 "종합전자상가라는 세운상가만의 매력을 살릴 수 있는 재개발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또다른 세운상가 상인은 "건물주, 상인 모두 이해관계가 달라 모두의 이야기를 듣다가는 이도저도 안될 것"이라며 "서울시에서 추진력 있는 결정을 해줬으면 좋겠다"면서 "상인들은 대체 상가를 마련해주던지 상가 이주비를 제공하는 조치를 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세운상가의 방향성으로 '공원화'를 내걸었다. 지난해 4월 세운상가 건물을 헐어 종묘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공원을 만들고, 양옆으로 초고층 복합 빌딩 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 선도사업의 일환으로 서울 종묘~퇴계로 일대 민간 재개발시 세운상가군 매입 기부채납을 받아 녹지를 조성하겠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철거 전 토지 보상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미국 출장에서 세운상가 재개발 문제를 언급하며 "(당장) 확정적으로 말할순 없지만 수용하는 방식도 있다"고 언급했다. 재개발 소식이 알려진 후 땅 주인들은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감정평가액 대비 2배 가까이 높은 가격에 팔겠다고 해 시의 매입이 어려워진 상황을 '수용'으로 풀겠다는 심산이다.
그러나 당장 인근 상인과 시민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장기적 구상인 '공원화'만 앞세우기에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미 건물이 노후한 상태고 최근 사건과 같은 인재(人災)가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근 상인도 "철거를 하든 무엇을 하든 빨리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면서 "출근할 때마다 현장을 보는데 무섭고, 사람이 죽을 뻔했는데 왜 별다른 이야기를 안 해주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세운상가는 우리나라 최초 주상복합 건물이다. 2006년 상가 일대가 재정비촉진구역으로 지정돼 건물을 헐 계획이었다. 2009년에는 세운상가의 일부였던 현대상가가 철거됐으나, 2014년 재정비 계획이 백지화되면서 나머지 건물은 존치됐다. 세운상가는 2017년 리모델링 작업을 마치고 재개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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