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골목에 담배 꽁초가 버려져 있다. 주소현 기자 |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거짓말, 정말 안 버려요? 솔직히 저는 바닥에 버려요. 쓰레기통도 안 보이잖아요.” (20대 직장인 B씨)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거리에서 꽁초를 버리던 한 시민에게 물었다. 왜 꽁초를 바닥에 버리느냐고. 그러자 이 같이 반문했다.
꽁초 쓰레기를 바닥에 버리는 건 당연히 불법이고 무단투기다. 그런데 흡연자들도 말못할 항변이 있다. 거리에 쓰레기통이 없으니 바닥에 버리지 않으면 담배 꽁초를 들고 다녀야 한다는 것.
한 두번이야 할 수 있어도, 결국 버릴 데가 마땅치 않으니 무단투기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이유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 거리에 설치된 담배 꽁초 수거함. 주소현 기자 |
물론, 비겁한(?) 항변일 수 있지만, 흡연자들은 흡연자 나름의 고충이 크다. 제대로 버릴 곳을 만들어달라.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꽁초를 버릴 수 있는 쓰레기통이 많으면 된다. 그래서 나온 게 꽁초 전용 수거함이다.
과연 꽁초 전용 수거함이 효과가 있을까? 실제 확인을 해봤다.
꽁초 전용 수거함은 담배 개비만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입구에 성인 키의 절반 정도 오는 높이의 쓰레기통이다. 현재 서울 시내에 200여 개 설치돼 있다.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다. 많은 구는 30~40개, 아예 없는 구도 있다.
서울 종로구 내 꽁초 투기 및 수거함 위치도. 붉은색은 투기 장소, 푸른색은 수거함이다. 수거함이 설치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인근(왼쪽)보다 4호선 혜화역 인근에 꽁초 쓰레기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타서울 제공] |
비영리 스타트업 이타서울은 2020년부터 지난 8월까지 서울 종로구를 대상으로 꽁초 쓰레기 투기 장소와 수거함 현황을 조사했다. 해당 기간 종로구에서 수거한 꽁초 쓰레기는 총 9710개.
종로구 내 동별로 살펴보면, 가장 많이 나온 곳은 대학로가 있는 이화동으로, 2972개(30.61%)를 차지했다.
뒤이어 종로1·2·3·4동 1790개(18.43%), 사직동 1771개(18.24%) 등의 순이었다.
주목할 만한 장소는 내자동과 필운동, 체부동에 걸쳐 있는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 이 곳이 중요한 건 바로 꽁초 수거함 11개가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종로구 내 총 설치된 꽁초 수거함(29개) 절반 가까이가 이 곳에 있다.
이 3개 동은 이번 조사에서 꽁초 쓰레기 수거 순위 하위권을 차지했다. 실제 현장 분위기도 그랬다. 특히 상인들이 크게 반겼다.
체부동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C씨는 “술 마시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꽁초를 버리지만 적어도 수거함 근처에라도 모인다”며 “가게 바로 앞에 수거함이 있어 청소하기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내자동 거리에 설치된 담배 꽁초 수거함. 주소현 기자 |
꽁초 수거함의 위력은 다른 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폐기물협회에서 2017년 종로구에서 혜화역과 광화문역 인근 거리에 약 1년 간 꽁초 수거함 7개를 시범 설치한 결과, 버려진 쓰레기 양이 10~40% 줄어들었다.
인근의 주민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당시 인근 주민 4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87.5%는 “거리 청결이 개선됐다”, 93.75%는 “수거함 유지 또는 확대 운영을 원한다”고 답했다.
서울 종로구 종로3가동 거리에 설치된 담배 꽁초 수거함. 주소현 기자 |
꽁초 수거함을 확대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면, 흡연자 개인이 꽁초를 처리할 방도를 마련하는 방안도 있다. 개인이 휴대용 재떨이를 들고 다니거나 시가랩을 이용하는 식이다. 시가랩은 꽁초를 감싸 담뱃갑에 보관할 수 있도록 특수 포장 용지다.
근본적으론 꽁초 무단 투기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흡연자들은 담배 꽁초를 거리에 버리는 자체가 습관화 돼 있다”며 “과태료를 부과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경각심을 갖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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