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의 한 야생동물 카페에 전시된 미어캣들. 주소현 기자 |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우리 라쿤 친구 먹이 한번 줘보시겠어요?”
입장료는 1만6000원. 2개층짜리 테마카페다. 들어가보니 너구리과인 라쿤 뿐이 아녔다. 미어캣, 왈라비 등 이색동물이 살고 있다. 들이나 숲이 아닌, 마룻바닥에서다.
이 곳에서 수십마리 동물들이 모여 살고, 돈을 내면 구경하고 이들을 만질 수도 있다.
야생동물을 좁은 공간에 가두고 전시하는 식의 테마카페가 유행이다. 전국 240개소에 이른다. 이 곳에 갇힌 야생동물들만 262종 5000여마리.
심지어 이는 강아지나 고양이 등은 제외한 수치다. 이를 포함하면 1만마리 이상이다. 동물원조차 최근엔 존폐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테마카페는 더 심각한 논란이다.
이미 이 같은 문제를 인식, 올해 연말 이후부턴 법으로 금지시켰다. 하지만 현 상황으론 내년까지 대부분 테마카페가 불법 운영될 소지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야생동물 카페에서 관람객이 주는 먹이를 라쿤이 잡으려 하는 모습. 주소현 기자 |
12일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환경부에서 받은 회신에 따르면 이날까지 각 지방자치단체에 들어온 야생동물 전시시설 영업 신고는 0건이다.
개정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이 시행되는 12월 14일부터 동물원이나 수족관으로 허가 받지 않은 시설에서 살아 있는 야생 생물을 전시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다만 법 시행 전까지 보유한 동물의 종, 개체 수 등 현황을 소재한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면 2027년 말까진 한시적으로 야생동물 전시시설을 운영할 수 있다. 즉, 연말까지만 시설을 운영하거나 혹은 신고를 통해 2027년 말까지 운영한 뒤 폐쇄해야 하는 식이다.
하지만 두달 남짓 남은 현 시점까지 신고된 건수는 0건이다. 다시 말해 전국에 우후죽순 늘어난 테마카페는 연말 이후부턴 문을 닫거나 불법 운영되는 셈이다. 불법 시설일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야생동물 카페에서 관람객들이 왈라비를 쓰다듬고 있다. 주소현 기자 |
서울 마포구의 한 야생동물 카페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왈라비. 주소현 기자 |
강력한 법적 제재가 등장한 건 야생동물들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에서 무분별하게 전시하는 시설들은 유행처럼 번진 영향이 크다.
환경부의 의뢰에 따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2021년 4월까지 6개월 간 조사한 소규모 야생동물 전시시설 현황에 따르면 전국에서 동물원 외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업체는 총 240개소다.
이곳에 갇힌 야생동물은 총 262종 5043마리. ▷포유류 1170마리 ▷조류 1552마리 ▷ 파충류 2063마리 ▷양서류 258마리다. 이 중에서도 귀여운 생김새로 인기가 많은 라쿤은 44개 업체에서 118마리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강아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이나 가축은 제외한 수치다. 강아지와 고양이 등까지 포함하면 동물원 외 전시시설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은 총 303종 1만3069마리로 두 배 이상 늘어난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야생동물 카페에서 관람객들이 쳇바퀴 도는 라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주소현 기자 |
여기에 야생동물들을 도심 한 가운데 비좁은 실내에 살게 하는 자체가 학대라는 인식이 커진 점도 한 몫했다.
어웨어가 실시한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한 동물복지 국민인식조사에서 응답자 중 74.1%는 ‘나무, 흙 등 습성에 맞는 사육환경’이 동물원 동물의 복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외에 ‘소음 등 외부 자극을 피할 수 있는 은신처’(63.3%), ‘관람객과의 충분한 거리’(49.5%) 등을 꼽았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야생동물 카페에서 직원이 고양이용 장난감 낚시대를 이용해 라쿤을 유인하고 있다. 주소현 기자 |
전시시설 속 야생동물들의 처지는 달라진 인식이나 법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지난 11일 찾은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테마 카페. 문을 연 지 삼십 분 가량 지나자 스무 명이 넘게 찾는 등 인기는 여전했다. 이들 대부분은 외국인이었다.
인원이 어느 정도 모이자 직원은 라쿤 한 마리를 관람객들 사이로 풀었다. 미어캣 우리 속으로 들어갈 인원을 줄 세워 받기도 했다.
이곳 동물들의 모든 행동은 철저히 관람 위주로 돌아갔다. 어깨 위에 올라타도록 하거나 먹이를 동물 키보다 높이 줘 손으로 잡으려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도록 했다. 고양이용 장난감 낚시대를 흔들며 라쿤을 유인하거나 쳇바퀴를 타도록 연출하기도 했다.
카메라 세례에서 벗어나 있는 동물들은 피로한 모습이었다. 쿠션이나 담요 등에 파묻혀 잠을 청하고 있었다. 붉은 여우 한 마리는 투명한 유리벽에 가로 막힌 채 땅 파는 발짓을 반복했다. 반려동물인 고양이조차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이자 문 앞을 뱅뱅 돌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야생동물 카페에서 붉은 여우들이 땅을 파고 웅크리고 있다. 주소현 기자 |
서울 마포구의 한 야생동물 카페에서 고양이가 출입문 앞에서 뱅뱅 돌고 있다. 주소현 기자 |
전시시설들이 문을 닫은 후에도 야생동물들이 유기 또는 방치되지 않고 적합한 환경으로 돌아가는 것도 숙제다. 이 동물들은 허가된 동물원이나 보호시설로 가게 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서식 환경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포유류 위주로 충남 서천에 위치한 국립생태원 인근에 보호시설을 짓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웅래 의원은 “동물권 보장을 두고 시민 사회와 정치권의 꾸준한 합의를 통해 야생동물 금지가 시행을 앞두고 있다”며 “동물복지 사회를 위해 나아가는 한 걸음을 내디딘 만큼 동물과 인간 모두 행복한 사회가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어 “환경부는 안전하고 유익한 동물원, 수족관의 이용과 동물권 보장이 가능해 질 수 있도록 제도 시행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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