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보다 더 큰 사이즈와 고급옵션을 갖춘 ‘풀사이즈 SUV’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쉐보레 제공] |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전세계 상위 15대 자동차 기업을 대상으로 한 친환경 성적 평가에서 현대차·기아가 9위를 차지했다.
주된 평가 요소는 전기차 등 무공해 차량으로 전환 속도인데, 현대차·기아의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 중 절반 이상이 스포츠유틸리티(SUV) 등인 것도 감점 요인으로 작용했다.
19일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15대 자동차 기업의 성적을 매긴 결과 1위는 100점 만점에 41.1점을 받은 메르세데스 벤츠, 최하위인 15위는 3.2점을 받은 일본의 스즈키로 나타났다.
상위권에는 BMW(2위), 상하이자동차(SAIC·3위) 등이 자리했다. 10위 이하 하위권에는 혼다, 닛산, 창안자동차, 토요타, 창청자동차, 스즈키 등 일본과 중국의 자동차기업들이 포진했다.
특히 스즈키가 낮은 성적을 받은 데는 전통적인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 등 무공해 차량으로의 전환이 더딘 점이 주효했다. 실제 스즈키는 지난해 전기차를 한 대도 판매하지 않았다.
평가는 ▷탈내연기관 계획 성과(77점) ▷공급망 탈탄소화 성과(18점) ▷자원 효율성 및 지속가능성 제고 성과(5점)에 따라 이뤄졌다.
자동차의 전체 생애주기에서 주행 단계에서 배출되는 탄소가 70~80%를 차지한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고려됐다. 그러나 이외에도 철강 등 생산 단계에서 탄소배출량, 재활용 원료 사용 등도 종합적으로 점수에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15개 자동차 기업 친환경 순위 [그린피스] |
상위권 기업들은 비교적 좋은 성적을 받은 전략에서 차이를 보였다. 1,2위를 차지한 벤츠와 BMW의 지난해 판매한 무공해차 비중은 각각 7.25%, 10.32%로 3위를 차지한 상하이자동차(35.3%)보다 낮았다.
그럼에도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한 비결은 공급망 탈탄소화 성과에 있다. 벤츠와 BMW는 18점 만점인 공급망 탈탄소화 분야에서 모두 13.0점을 받았다.
무공해차 판매 비중을 약 30%로 가장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린 상하이자동차가 3위에 그친 것도 공급망 탈탄소화 분야에서 -1.0점으로 저조한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공급망 탈탄소화는 각 기업들이 제시한 재생에너지 사용 및 탄소 저감 목표가 분명하거나 저탄소 철강을 위한 기술 투자 등에 따라 점수가 매겨진다.
포드(4위), GM(5위), 스텔란티스(7위) 등도 지난해 무공해차 판매 비중이 채 10%되지 않음에도 공급망에서 탈탄소화 분야에서 10점 이상의 점수를 받으며 상위권에 자리했다.
또다른 중요한 가점 요소는 무공해차 시장 개척이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 등으로 전환에 적극적인 유럽 및 중국 외의 13개국(호주·브라질·캐나다·일본·인도·인도네시아·멕시코·필리핀·한국·태국·터키·미국·베트남)에서 입지가 있는 기업에 높은 점수가 부여됐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캠페이너들이 보고서 발행에 맞춰 자동차 기업의 탈탄소를 촉구하는 활동을 벌였다 [그린피스] |
주목할 만한 감점 요소는 SUV 차량 판매 비중이다. 평균적으로 SUV 차량이 다른 유형의 승용차보다 철강 사용량이 20% 더 많아서다. 그린피스는 “자동차 부문에서 철강 생산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려면 SUV 생산 및 판매를 축소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같은 친환경 평가 요소는 SUV를 비롯한 레저용 차량(RV) 선호도가 높아지는 국내 상황과 대조적이다. 대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 8월까지 국내 완성차 5개사의 내수 판매량 중 SUV 등의 비중이 61.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모든 평가 요소들을 종합했을 때 현대차·기아의 점수는 20.5점(9위)로 중하위권에 그쳤다. 지난해 전세계에서 판매한 무공해차 비중도 5.58%도 평범한 수준인 데다 SUV 판매는 53%로 절반을 넘었기 때문이다.
이 15개 기업들은 지난해 전세계 자동차 판매량 중 74%를 판매했다. 이중 내연기관차가 70%로 절대 다수고, 무공해차는 4%에 불과했다. 그린피스는 전통적 내연기관차에서 무공해차로의 전환을 평가하기 위해 무공해차 판매 비중이 90%가 넘는 테슬라, 바이두 등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보고서 작업을 총괄한 에이다 콩(Ada Kong) 그린피스 홍콩사무소 프로그램 부국장은 “토요타, 폭스바겐, 현대기아차와 같은 거대 자동차 제조업체는 빠르게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며 “전기차 판매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2022년 세계 상위 15개 자동차 기업이 판매하는 자동차 중 무려 94%가 여전히 화석 연료로 운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혜란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현대차·기아는 3년 동안 친환경 평가에서 중위권에 머물러있다. 내연기관 차량과 SUV에 집중하는 경영 전략으로는 기후위기 대응은 물론 미래차 산업의 퍼스트 리더로 도약하긴 어렵다”며 “2030년까지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고 공급망 탈탄소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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