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인스타그램 캡쳐] |
[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종이컵도 플라스틱 빨대도 허용하고선, 일회용품 줄이기 도전?”
지난 7일, 속보가 떴다. 속보의 대상은 환경부. 환경부 정책이 속보로 주목받는 건 흔치 않다.
내용은 그만큼 파격이었다. 식당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를 철회하고,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무기한 연장하기로 한 것.
그리고 하루 뒤, 환경부 인스타그램에 ‘11월 챌린지 미션’이 올라왔다. 내용은 일회용품 안 쓰기 캠페인이다. 하루 전엔 일회용품 사용을 대폭 허용하더니, 곧 이은 SNS에선 일회용품 근절 캠페인을 올린 것.
한 카페에 비치된 일회용 컵과 플라스틱 빨대들 [헤럴드DB] |
비단 SNS 상의 논란만이 아니다. 일관성 없는 일회용품 정책에 곳곳에서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
빨대를 없앴던 카페들도 “정부가 쓰라고 했다”는 손님의 당당한 요구에 부랴부랴 플라스틱 빨대를 구매하는가 하면, 종이빨대 등 대체빨대 개발업체들은 하루아침에 줄도산 위기에 직면했다.
이를 위해 또 정부는 지원책을 강구 중이다. 플라스틱 빨대 유지를 위해 환경부가 나서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진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흔들린 신뢰란 지적이다. 환경 정책이 단기간에 오락가락하면서 환경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해달라는 국민적 합의는 더 멀어질 위기다.
환경부는 지난 8일 인스타그램에 ‘1회용품 사용 줄이고 선물받자’라는 내용의 ‘11월 챌린지 미션’을 올렸다. 그러면서 플라스틱 빨대 등이 사용된 일회용품을 줄이자는 그래픽을 첨부했다.
10일까지 이 글엔 80여개의 댓글이 달린 상태다. 지금까지 환경부의 인스타그램은 연예인 이찬원이 등장한 사례를 제외하면 통상 댓글이 10개를 넘지 않는다. 이를 감안할 때 80여개의 댓글은 이례적이다.
“인스타에서만 일회용품 줄이기를 한다”, “전형적인 그린워싱”, “오락가락한 정책을 보여주는 사례” 등 부정적인 평가가 절대다수였다.
앞서 환경부는 일회용품 감소를 목표로 작년 11월 24일부터 매장 안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비닐봉투 사용 등을 금지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이를 어겨도 과태료(300만원)를 부과하지 않는 계도기간을 1년간 유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환경부는 계도기간 종료를 불과 보름 앞두고 돌연 이를 철회했다. 매장 내 종이컵 사용을 허용하고, 플라스틱 빨대 계도기간을 사실상 무기한 연장시켰다.
이를 두고 내년 총선을 겨냥, 소상공인 표심을 얻고자 환경 정책을 후퇴시켰다는 비판이 일었다. 환경부는 “계도기간 종료에 맞춰 발표했기 때문에 총선과 관계 없다”고 선을 그었다.
환경부가 식당, 카페 등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 조치 철회를 발표한 지난 7일 서울 시내 한 카페에 플라스틱 컵과 빨대가 놓여있다. [뉴시스] |
예정된 계도기간 종료에 맞춘 것이란 환경부의 입장과 달리 일선 현장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환경부 발표 이후 카페부터 대혼란 중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빨대 없이 카페를 운영했던 한 업주는 이날 결국 플라스틱 빨대를 비치하게 됐다.
그는 “고객들이 ‘정부도 쓰라고 했다’며 오히려 당당하게 요구하니 할 말이 없었다”며 “부랴부랴 플라스틱 빨대를 주문해 비치한 상태”라고 전했다.
종이 빨대가 가득 든 상자가 창고에 쌓여있다. [A업체 제공] |
종이빨대 등 대체빨대 업체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예견된 일정에 맞춘 결정이란 환경부 입장과 달리, 이들 업체는 “사전 논의나 간담회, 토론회 등도 전혀 없었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 업체 대표는 “대체빨대 업체들이 망할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라며 “사전 검토를 안 했다면 무능한 것이고, 사전 검토를 못 했다면 급하게 결정했단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뒤늦게 환경부는 중소벤처기업부 등과 함께 종이빨대 업체 지원책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환경부가 플라스틱 빨대를 계속 쓰는 데에 지원책을 강구하게 된 꼴이다. 환경부의 역할이 뒤바뀐 셈이다.
환경부가 공식적으로 허용한 1회용 종이컵도 논란이다. 한국은 1회용 종이컵 사용량이 전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 중 하나다. 한해 사용량이 200억개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환경부는 종이컵 재활용이 용이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현장과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다. 1회용 종이컵을 재활용하려면 플라스틱의 일종인 코팅을 벗겨 내야 한다.
[헤럴드 DB] |
분리 과정에 드는 비용은 차치하더라도, 수거·선별·회수 시스템 등을 모두 갖춰야 한다. 그렇게 수거하더라도 코팅을 제거하는 데에 드는 비용 등까지 감안하면 안 쓰는 게 훨씬 더 경제적이다.
결국 종이컵을 허용하게 되면 현실적으로 대부분 소각 처리된다. 현재 종이컵 절대다수가 소각되고 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매년 종이컵 사용만으로도 연간 1억6000만㎏의 탄소가 배출된다. 자동차 6만여대에 맞먹는다.
그린피스 측은 “지난 1년간의 계도기간 동안 소상공인을 지원해 제도를 안착시키는 대신, 일회용품 규제를 사실상 포기하는 쉬운 방법을 택했다”며 “이번 발표는 사실상 플라스틱 규제를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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